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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포장정해동

자식을 돌보는 마음으로 동대산 가꾸는 ‘소나무들의 아버지’

정해동

42년간 동대산에 소나무 7천여 그루 심고 가꿔

“이렇게 가지를 쳐주면 새순이 돋아서 소나무가 쑥쑥 자랍니다.” 정해동 씨는 익숙한 손길로 소나무의 가지를 툭툭 쳐냈다. 큰 소나무 주변에는 1, 2년생 어린 소나무들이 가득했다. 주변 소나무들이 새끼를 친 것이다. 정 씨는 민둥산이었던 울산 북구 동대산 자락, 염포동 뒷산에 42년 동안 소나무 7,000여 그루를 심어 등산로를 직접 만들었다. 그가 만든 등산로는 염포동 뒷산 전체 면적인 66만㎡ 중 16만㎡에 달한다. 염포동 뒷산이 벌거숭이가 되어버린 사연은 그의 어린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1950~60년대, 당시 염포동에는 논도 없고, 공장도 없었다. 주민들의 유일한 생계 수단은 뒷산에 있는 나무를 베어 내다 파는 것이었다. 너도나도 나무를 베어 가다 보니, 어느새 뒷산은 잡풀만 가득한 마을의 애물단지가 되어버렸다.

마을 사람들, 정 씨 도와 함께 소나무 지켜

1972년 자동차 회사에서 일할 당시 동대산 자락의 아버지 묘를 자주 찾았던 그는 뒷산에 오를 때마다 항상 마음이 아팠다. 동대산을 위해서 무언가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정 씨는 소나무 새순을 구해와 무작정 한두 개씩 심기 시작했다. 당시 그의 나이 스물셋이었다. 소나무를 심으면 금세 자라리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소나무 새순은 1년에 한두 뼘 정도밖에 자라지 않았다. 정 씨는 조금이라도 빨리 울창한 산을 만들기 위해 소나무 묘목을 심기 시작했다. 한 그루에 3,500원이나 하는 묘목을 많을 땐 한번에 30~40만 원어치씩 사다가 심었다. 처음에 마을 사람들은 뒷산에 나무를 심는 그를 의아하게 쳐다봤다. 심지어 새순을 꺾어다가 술을 담그거나, 어린 소나무를 가져다 제집 마당에 심어버리기도 했다. 보다 못한 정 씨는 마을 사람들을 설득하기로 마음먹었다. 소나무를 심는 이유를 설명하는 정 씨의 모습에 마을 사람들은 점차 그의 진심을 이해하게 되었고, 그때부터 한마음으로 소나무 지키기에 나섰다. 이제 마을 사람들은 외지인이 나무를 훼손하면 ‘개인이 심은 것이니 건드리지 말라’고 말해주고, ‘나무를 사랑합시다’라는 표지판도 세워 주었다.

동대산은 내 자식이나 마찬가지

이제 그가 만든 동대산과 소나무 등산로는 울산의 명소가 됐다. 폭 4m 정도의 소나무 등산로를 따라 올라가면, 정상에서 울산의 전경이 한눈에 보이기 때문에 등산객들 사이에서 인기 만점이다. 40년 전의 민둥산이 푸른 숲으로 탈바꿈하는 동안 정 씨도 23세의 청년에서 백발의 60대 할아버지가 되었다. 요즘은 건강이좋지 않아 정 씨의 아들 재원 씨가 정 씨 대신 산에 오르며 소나무 숲 가꾸기에 한창이다. 정 씨가 이룩한 동대산의 푸른 역사가 2대째 이어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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