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이기안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이기안

약국 운영하며 모교에 21억여 원 재산 기부한 ‘동네 약사’

2013년 11월, 이기안·노신희 씨 부부는 충남 당진군 소재 8,790평 면적의 토지를 모교인 중앙대학교에 기부했다. 공시지가로만 21억 원에 이르는 재산이다. 중앙대학교에서 받은 개인 기부금으로는 최대 금액이었다. 중앙대는 그 기부금을 100주년기념관을 건설하는 데 일부 사용하고, 나머지는 ‘이기안-노신희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약학대 후배들에게 지급하기로 했다.

아버지에게 배운 ‘나눔의 삶’ 꾸준히 실천해

후배들을 위해 이런 큰 결정을 내린 이기안 씨의 ‘나누는 삶’은 아버지의 가르침으로부터 시작됐다. 어린 시절, 이 씨의 아버지는 “어렵게 사는 사람들이라도 세상에 천한 사람은 없으니 모든 사람들을 존중해야 한다”고 가르치곤 했다. 이러한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자란 이 씨는 자연스럽게 주변 사람들을 돕기 시작했다. 집이 없는 친구에게 자신이 세를 주고 있던 봉천동 재개발 지역의 판잣집을 내줄 정도였다.그가 약국을 하던 봉천동에는 판잣집이 몰려있었고 끼니를 굶는 사람들도 많았다. 이 씨 부부는 그 곳에서 자식들과 라면을 몇 박스씩 돌리기도 하고, 쌀이나 연탄을 가져다주기도 했다. 돈이 없어 의료혜택을 못 받는 사람들에게는 의료비를 대주는 일도 많았다. 한번은 진료비가 없어 병원에서 문전박대를 당했던 한 쌍둥이 엄마에게 의료비를 대주고 약국 위층에 머물게 하는 등 성심껏 돌봐준 적이 있다. 이후 그녀는 감사함을 잊지 못하고 명절 때마다 이 씨의 약국 문 앞에 고기를 사서 걸어두고 가곤했다. 이 외에도 이 씨는 1983년 ‘가톨릭약사회’를 창립해 회원들과 봉사도 하고 복지병원 등에 기부도 해왔다.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신부가 아프리카 수단에서 의료혜택이 부족하다는 편지를 보내오자 1,000만 원 상당의 약품과 성금을 보내주기도 했다.

부인과 눈앞에 어려운 사람 도우면서 살았을 뿐

이 씨는 부인의 든든한 지원이 없었다면 이러한 일들을 이어가기 쉽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아내가 알려지는 것을 꺼려해서 그렇지, 오히려 기부에는 더 앞장서는 편이라며 부인 노 씨에 대한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약국을 함께 운영했지만, 저는 바깥에서 일을 많이 했습니다. 그 동안 살림하고 약국을 꾸리고 아이를 키운 건 바로 아내입니다. 저의 기부와 봉사활동을 마음으로 응원해 주며 함께해 준 아내에게 정말 고마울 따름입니다.” 이 씨는 처음부터 무언가를 계획하고 기부한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저 어려운 사람을 도와 주며 살다 보니 여기까지 왔다는 게 그의 말이다. 삶에 있어 나눔이 자연스러웠다는 이 씨, 그 따뜻한 마음 덕에 그의 삶은 더욱 빛이 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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