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지서 앞의 침묵이 일깨운 안경사의 소명
오상영 대표의 인생을 바꾼 결정적인 순간은 2002년에 찾아왔다. 한 어르신이 안경이 없어 손에 든 종이의 글씨를 읽지 못하는 모습을 보며 그는 깊은 충격을 받았다.
안경사로서 자신이 가진 기술이 누군가에게는 삶을 송두리째 바꿀 수 있는 도구임을 절실히 깨닫게 된 계기였다. 그날 이후 그는 ‘어르신 밝은 세상 안경 나눔’이라는 이름으로 본격적인 시력 복지 봉사에 뛰어들었다. 직접 안경 상자를 들고 마을 곳곳을 찾았다. 작은 안경 하나가 누군가에게는 다시 손주에게 편지를 쓰고, 신문을 읽으며 세상 돌아가는 소식을 접하고, 어두운 밤길을 안전하게 딛게 하는 용기가 된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그 기쁨의 무게가 오상영 대표를 지난 23년 동안 단 한 번의 멈춤 없이 달리게 했다.
이웃의 눈과 귀를 밝히는 등불이 되다
그의 봉사는 안경원의 좁은 실내를 넘어 완주군 곳곳으로 뻗어 나간다. 그는 정기적으로 완주군 전역의 노인복지관과 장애인 시설을 방문해 무료 시력 검사를 진행하고 있다. 경제적인 부담 때문에 시력 저하를 방치하던 어르신들에게 맞춤형 근용안경(돋보기)과 백내장 예방용 선글라스를 제작해 드리는 일은 이제 그의 거를 수 없는 일과가 되었다. 안경을 고쳐 쓰고 눈이 훤하게 잘 보인다며 기뻐하는 어르신들의 표정을 마주할 때, 그는 의사보다 더 큰 보람을 느끼곤 한다. 현장 중심의 활동은 매년 4회 이상의
대규모 나눔 행사로 정착되었고, 지역사회의 탄탄한 복지 안전망으로 자리 잡았다. 최근에는 시력뿐만 아니라 청각 문제로 소통에 어려움을 겪는 이들을 위해 보청기 기부와 청력 상담까지 병행하고 있다. 보이지 않는 답답함과 들리지 않는 고립감을 동시에 해결해 주려는 그의 노력은 진정한 봉사자의 면모를 보여준다.
현장에서 증명하는 공동체의 가치
오상영 대표의 활동은 안경 지원을 넘어 지역사회의 전방위적인 복지로 뻗어나간다. 독거노인과 조손 가정의 무너진 벽을 세우는 집수리 봉사부터 겨울철 연탄 나눔,
농촌 일손 돕기, 지역 환경 정화 활동까지 그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 그는 삼례 로타리클럽 회장과 지역사회보장협의체 위원장 등 수많은 직책을 맡고 있지만,
그에게 중요한 것은 직함이 아니라 땀방울이 흐르는 ‘현장’이다. 특히 치매 어르신들을 위해 6년 동안 장기 원예 치료 봉사를 실천했던 세심함은 그가 나눔을 대하는 태도가
얼마나 깊고 진지한지를 보여준다.
또렷해진 시야만큼 단단해진 인생의 철학
그는 말한다. 나눔은 가진 것을 과시하는 일이 아니라, 조금 덜어 이웃의 불편을 줄이는 일이라고. 23년 동안 수많은 안경을 건네며 이웃의 시야를 넓혀주었지만, 그 과정에서 가장 큰 혜택을 본 것은 정작 자신이라고 고백한다. 타인의 흐릿한 하루를 또렷하게 만드는 과정에서 자신의 삶이 나아가야 할 방향 또한 명확해졌기 때문이다. 세월이 흐르며 그의 머리카락에는 서리가 내려앉았지만, 사람을 향한 그의 열정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다. 오늘도 삼례읍의 작은 안경원에서 시작된 빛은 렌즈를 통과해 완주 곳곳의 어두운 구석을 따스하게 밝히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