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료를 살린 피 한 방울, 인생의 물길을 바꾸다
김원종 씨가 정기 헌혈의 길에 들어선 계기는 사뭇 인간적이고도 극적이었다. 혈기 왕성하던 20대 시절, 군 훈련소에서 마주한 헌혈차는 그저 고된 훈련을
잠시나마 피할 수 있게 해주는 고마운 쉼터처럼 보였다. 하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했던 첫 헌혈은 1990년 회사 정문 앞에서 벌어진 대형 교통사고를 목격하며 숙명으로
바뀌었다. 함께 땀 흘리던 동료가 피를 흘리며 사경을 헤맨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그는 망설임 없이 혈액원으로 달려갔다. 훗날 자신이 나눈 피가 실제로 동료의 목숨을
구하는 데 결정적인 보탬이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순간, 그는 온몸에 전율을 느꼈다. 내 몸의 일부가 누군가에게는 유일한 삶의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깨달음은 37년간 이어진 헌혈의 시작점이 되었다.
깨끗한 나눔을 위한 37년의 지독한 절제
헌혈을 500회 이상 했다는 것은 단순히 횟수의 축적만을 나타내지 않는다. 그만큼 자신을 통제하고 다스려온 지독한 절제의 기록인 것이다. 김원종 씨는 “건강한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특권이 바로 헌혈”이라고 말한다. 누군가의 혈관으로 흘러 들어갈 피이기에 그 무엇보다 깨끗하고 건강해야 한다는 것이 그의 확고한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그는 평생 담배를 피우지 않았고, 헌혈 일정이 다가오면 식단부터 컨디션 조절까지 완벽을 기한다. 2주에 한 번씩 성분헌혈을 하기 위해 주말마다
창원과 김해의 헌혈의 집을 찾는 일상은 이제 그에게는 숨 쉬는 것만큼이나 당연한 일과가 되었다. 코로나로 전 국민이 위축되어 혈액 수급이 비상일 때도 그는 어려울
때일수록 더 힘을 모아야 한다는 마음으로 가장 먼저 팔을 걷어붙였다.
헌혈을 넘어 지역의 시린 곳을 데우는 손길
피를 나누는 일에서 시작된 마음은 어느새 지역사회 곳곳으로 번져갔다. 김원종 씨는 자신과 뜻을 같이하는 경남 지역의 다회 헌혈자들을 모아 ‘경남 헌혈사랑 봉사회’를 직접 발족했다. 회원들과 함께 하는 이 활동은 그에게 또 다른 사명이 되었다. 매년 겨울이면 회원들과 함께 연탄을 직접 나르며 저소득층 가정의 시린 방을 데운다. 저소득층 아이들을 위한 학습지 후원과 홀로 사는 이들을 위한 밑반찬 배달, 청각장애 아동을 위한 점자책 만들기까지 그의 손길은 멈출 줄을 모른다. 도움이 필요하다는 소식이 들리면 그는 가장 먼저 발걸음을 옮긴다. 도움이 절실한 환자들에게는 수십 년간 모아온 헌혈증서를 망설임 없이 건넨다. 증서를 받은 이들이 전해오는 소박한 감사 인사는 그의 37년이 결코 헛되지 않았음을 나타낸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묵묵히 이어온 그의 발걸음은 단순한 선행을 넘어 우리 사회의 틈새를 메우는 가장 따뜻한 온기로 흐르고 있다.
함께 걷는 길, 나눔으로 완성되는 행복
김원종 씨의 500회 헌혈 달성 현장에는 언제나 곁을 지켜준 아내도 함께였다. 꾸준히 헌혈에 동참해 온 배우자의 지지는 그가 37년간 지치지 않고 달릴 수 있었던 가장 큰 원동력이었다. 그는 헌혈을 “남에게 베푸는 것이기도 하지만, 결국 나의 건강을 확인하고 지키는 과정”이라고 정의한다. 나눔을 통해 타인이 희망을 얻고, 그 희망을 보며 자신이 더 큰 행복을 누리는 선순환. 그의 몸속에서 쉼 없이 흐르는 붉은 혈액은 오늘도 누군가의 심장을 다시 뛰게 하고, 우리 사회를 지탱하는 연결고리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