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정고시 소년의 다짐, 야학의 전설이 되다
이상곤 교장의 나눔은 배움에 목말랐던 자신의 어린 시절을 잊지 않는 마음에서 시작되었다. 가난과 환경 탓에 정규 교육 과정을 제때 마치지 못하고 검정고시를 통해 어렵게 학업을 이어갔던 소년 시절, 그는 배움이 한 인간의 존엄을 어떻게 지켜내는지 몸소 체험했다. 상지대학교 재학 중이던 1983년, 지인의 권유로 원주 성지 야학에서 영어 교사로 첫발을 내디뎠을 때 그는 깨달았다. 세상에는 여전히 나이가 들어서도, 혹은 형편이 어려워서도 ‘기역 니은’과 ‘알파벳’ 앞에 작아지는 이들이 너무나 많다는 것을 말이다. 그날 이후 그의 삶은 오직 배움의 사각지대를 밝히는 데 맞춰졌다.
일일호프와 맞춤형 교재, 열정으로 일궈낸 교실
졸업 후 제천으로 돌아온 그는 1987년 제천정진야간학교를 설립했다. 초기 운영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학교를 유지할 자금이 부족해지자 그는 1996년부터 5년간 직접 일일호프를 운영하며 5,000만 원에 가까운 자금을 마련했다. 술잔을 나르는 손으로 밤에는 영어 단어를 칠판에 적었고, 시중 교재가 어려운 만학도들을 위해 밤을 새워 직접 영어 교재를 제작했다. 사회복지 공무원으로 재직하던 시절에도 그는 퇴근 후 피곤한 기색 없이 단양야간학교 설립(2000년)에 앞장섰다. 낮에는 주민들의 복지를 살피고 밤에는 그들의 꿈을 가르치는 1인 2역의 삶은, 38년이 넘는 시간 동안 단 한 번의 쉼표 없이 이어졌다.
소백산 야생화처럼 피어난 제자들의 합격증
그의 진심에 화답하듯 야간학교의 문을 두드린 학생들은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용기를 냈다. 한글을 몰라 손주들의 편지를 읽지 못했던 할머니, 가난 때문에 학업을 접어야 했던 중년의 가장들이 그의 교실에서 다시 꿈을 꿨다. 이상곤 교장은 합격증을 들고 환하게 웃는 제자들을 볼 때면 "소백산의 그 어떤 야생화보다 아름답다"라며 눈시울을 붉힌다. 2025년 스승의 날, KBS <한국인의 밥상>에 출연한 제자들이 선생님을 위해 정성껏 차려낸 밥상은 그가 40년 넘게 뿌린 헌신의 씨앗이 얼마나 풍성한 결실을 맺었는지를 보여주는 감동적인 장면이었다. 제자들에게 그는 단순한 교사가 아니라, 삶의 막다른 길에서 만난 구원자이자 영원한 스승이었다.
지역사회의 곁을 지키는 참 스승
퇴직 후 그의 활동 범위는 더욱 넓어졌다. 야간학교 교장직을 수행하면서도 마을 집수리 현장에서는 망치를 든 목수가 되고, 연탄 나누기와 농번기 일손 돕기 현장에서는 기꺼이 이웃의 든든한 팔다리가 된다. 특히 지역 어르신들을 위해 무딘 칼을 갈아주는 ‘칼갈이 봉사’처럼 작지만 손이 많이 가는 일들에도 그는 언제나 앞장선다. 주민들에게 도움이 필요한 순간이라면 격식을 차리기보다 먼저 소매를 걷어붙이는 그의 모습은, 지역 사회라는 거대한 학교에서 몸소 실천하는 살아있는 교육과도 같다. 2,500시간이 넘는 봉사 시간은 그에게 숫자가 아니라 삶의 방식 그 자체다. "언제나 이웃과 나란히 걷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의 말처럼, 이상곤 교장은 뒤처진 이의 손을 잡고 나란히 걷는 동행자로, 단양 밤하늘 아래 가장 따뜻한 인생의 이정표를 세워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