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든아홉의 권영섭, 차가운 병동을 따듯한 온기로 적시다
뇌종양과 암을 이겨내고 이어온 1만 시간의 헌신
교단에서 병실로, 멈추지 않는 교육자의 길
권영섭 씨의 인생 1막은 44년 동안 초등학교 아이들과 함께한 시간이었다. 보이스카우트 지도자로 활동하며 아이들에게 봉사의 정신을 가르치던 그는 퇴직을 앞두고 문득 생각했다. 성장의 기쁨을 누리는 아이들만큼이나, 생의 마지막 언저리에 서 있는 어르신들에게도 누군가의 손길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말이다. 2000년 정년퇴직과 동시에 그는 정장을 벗고 자원봉사자 조끼를 입었다. 서울시립은평노인종합복지관에서 홀몸 어르신과 치매 노인 가정을 방문해 도시락을 배달하기 시작했다. 문을 열어주던 노인의 눈빛, “고맙다”라는 낮은 목소리가 그의 발걸음을 붙들었다. 작은 물품을 전하고 소액을 후원했을 뿐인데, 그들은 세상이 자신을 잊지 않았다는 사실에 더 고마워했다. 그 표정이 그를 다시 밖으로 나가게 했다.
암흑 속에서도 등불이 된 ‘1만 시간’의 기록
봉사에 매진하던 그에게도 시련은 찾아왔다. 뇌종양 수술과 전립선암 판정. 자신의 몸조차 가누기 힘든 병마의 침입에도 그는 목욕탕으로 향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2013년부터 서북병원 호스피스 병동에서 시작한 목욕 봉사는 가장 고되고 숭고한 일이었다. 쇠약해진 환자들의 몸을 따뜻한 물로 적시고 비누칠을 하며, 그는 그들의 고통을 함께 씻어냈다. 환자들의 몸을 닦아주다 보면 오히려 자신의 투병 의지가 더 강해졌다. 그는 1만 시간이 넘는 세월을 그렇게
아픈 이들의 벗으로 살았다.
권영섭 씨는 단순히 몸으로만 봉사하지 않았다. 평생 교직 생활로 모은 소중한 퇴직금을 털어 어려운 이웃을 위한 물품을 사고 소액이나마 후원을 지속해 왔다. 공식적인 후원 금액만 수백만 원에 달하지만, 대가를 바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소외된 노인들에게 생필품을 전달할 때 마주하는 감사한 눈빛, 그것이 그를 다시 움직이게 하는 원동력이었다. 그는 늘 “샘물은 퍼낼수록 맑아진다”고 강조한다. 베풀수록 마음이 깨끗해지고, 그 빈 자리에 다시 새로운 행복이 차오른다는 진리를 몸소 증명하며 살았다.
여든아홉, 여전히 맑게 흐르는 샘물
16개의 자원봉사 상훈을 받았음에도 그는 여전히 고개를 숙인다. 25년 전 자신을 처음 봉사의 길로 이끌어준 김춘화 선생님을 잊지 못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고 싶어 하는 그의 마음에는 소년 같은 순수함이 남아 있다. 뇌종양 수술 후유증과 암 치료의 고단함 속에서도 월·수·금 오전이면 어김없이 서북병원에 나타나는 그의 뒷모습은 그 자체로 살아있는 교과서다. "남을 도울 수 있어 내가 더 행복하다"고 말하는 그의 미소는, 차가운 병실 안을 따뜻하게 적시는 가장 맑은 샘물이다.
비워냄으로써 완성되는 삶의 품격
권영섭 씨의 인생 2막은 비워내는 시간이었다. 시간과 건강, 그리고 재산까지 아낌없이 쏟아부었지만, 역설적으로 그의 삶은 그 어느 때보다 가득 차 보인다. 죽음이 가까이 머무는 호스피스 병동에서 누군가의 몸을 닦아주는 일. 그것은 존엄을 지켜주는 마지막 예의이자, 가장 조용한 사랑이다. 건강이 허락하는 한 묵묵히 봉사를 이어가겠다는 여든아홉의 그는 여전히 묻는다. 당신의 샘물은 오늘 얼마나 맑게 흐르고 있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