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화마 속에서 7명을 업어 나른 마을의 아들”

8년 차 선원 수기안토, 경북 영덕 산불 현장의 영웅이 된 사연

수기안토

수기안토

수기안토

깜깜한 연기 속, 문을 부수고 할매를 업다

그날 밤 8시경, 수기안토는 매캐한 연기에 목이 아파지는 것을 느끼며 심상치 않은 기운을 감지했다. 아니나 다를까, 화마가 동네를 잡아먹을 듯 들이닥치고 있었다. 이장님과 계장님이 대피 방송을 했지만 소리는 잘 들리지 않았고, 밤눈이 어두운 어르신들은 평소처럼 TV를 보다 잠든 시간이었다. 수기안토는 연기를 마셔가며 마을 길을 서너 번씩 오르내렸다. “할매! 할매! 빨리 나왔어! 빨리 나왔어!” 평소 어르신들에게 배운 서툰 사투리가 긴급한 대피 신호가 되었다. 기척 없는 집 앞에서 그는 손이 부서져라 문을 때리고 발로 차며 할매를 외쳤다. 귀가 어두워 문 두드리는 소리를 듣지 못한 마지막 일곱 번째 할머니의 집은 이미 불길이 집 바로 뒤까지 바짝 다가온 상태였다. 수기안토는 망설임 없이 문을 부수고 들어가 TV 앞에 앉아 계신 할머니를 업고 불길을 빠져나왔다.

“우리 동네, 우리 가족이니까요”

경사가 심한 골목길에서 다리가 불편한 어르신들을 한 명씩 업어 나르는 일은 숨이 턱 끝까지 차오르는 고난이었다. 하지만 그는 “그때는 힘들어도 힘든 줄 몰랐다”라고 회상한다. 인도네시아에 계신 부모님과 할머니를 떠올리며, 이곳 경정 3리 또한 자신의 고향 마을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무서워도 가만히 있으면 안 되잖아요. 내가 나이가 젊은데, 빨리 사람을 살려야지요.” 일곱 명의 어르신을 모두 방파제 안전한 곳으로 옮기고 나서야 그는 비로소 안도했다. 마을 전체가 불길에 휩싸여 3일 밤낮을 울며 안타까워했던 청년은, 정작 자신보다 “다친 어른이 한 명도 없어서 마음이 좋다”며 이웃의 무사를 먼저 챙겼다. 그에게 그 밤의 어르신들은 타국의 노인이 아니었다. 고향에 두고 온 가족이었다. 그 마음이 연기보다 먼저 길을 냈다. 결국 마을 주민 전원은 단 한 명의 희생자 없이 무사히 배를 타고 탈출할 수 있었다.

이방인이 아닌 우리 동네 ‘수기’

수기안토는 9년 전 처음 마을에 들어온 뒤 줄곧 주민들과 가족처럼 지내왔다. “이리 온나, 커피 묵고 가라”는 할머니들의 정겨운 참견 속에서 경상도 사투리를 배웠고, 매일 하루에 한 번씩 어르신들 집에 들러 안부를 묻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선주들과 주민들은 이슬람교를 믿는 그를 위해 밥상을 따로 차려주는 정성을 보였고, 수기안토는 그 고마움을 성실한 뱃일과 마을의 궂은일을 돕는 것으로 갚았다. 산불 현장에서 보여준 그의 용기는 갑자기 튀어나온 것이 아니었다. 9년간 쌓아온 깊은 유대감과 가족 같은 책임감이 위기의 순간에 불꽃처럼 피어난 것이었다.

잿더미 속에서 단단해진 ‘한국의 가족’

마을 어르신들은 이제 그를 ‘수기’라는 애칭으로 부르며 친손자나 다름없이 대한다. 수기안토 역시 이 마을 사람들이 인도네시아의 가족만큼이나 소중한 한국의 가족이다. 산불로 어구가 다 타버려 당장 생계가 막막한 상황에서도 주민들은 수기안토가 있어 천만다행이라며 가슴을 쓸어내린다. 수기안토는 7명의 생명을 구하고도 ‘사람은 다 똑같은 사람’이라며 겸손하게 웃어 보일 뿐이다. 오늘도 그는 여느 때처럼 그물을 손질하며 마을의 안녕을 살핀다. 비록 먼 타국에서 온 선원이지만, 그날 밤 그는 누구보다 뜨거운 심장을 가진 영덕의 아들이자 영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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