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점으로 잇는 세계, 암흑 속에 길을 내다”

이구범·권순인 부부의 2만 시간 점역 대장정

이구범,권순인 부부

이구범,권순인 부부

이구범,권순인 부부

교단에서 점자판 앞으로, 멈추지 않는 교육자의 소명

이구범, 권순인 부부의 삶은 오랫동안 학교라는 울타리 안에서 학생들과 함께해 왔다. 각각 수학과 과학을 전공하며 지식을 전하던 두 사람은 퇴직을 앞두고 우연히 시각장애 학생들이 학습할 도서가 부족해 학업을 포기하거나 흥미를 잃는 안타까운 현실을 목격했다. 보이지 않는다는 이유로 배우고 싶은 마음까지 꺾여서는 안 된다는 교육자의 신념은 곧바로 부부의 행동으로 이어졌다. 1999년, 아내 권순인 씨가 먼저 지적장애인 시설에서 봉사를 시작하며 나눔의 물꼬를 텄다. 남편 이구범 씨 또한 그 뜻에 깊이 공감하며 든든한 동행자가 되어주기로 했다. 평생을 나란히 걸어온 부부의 성실한 행보는 2009년 ‘숙명점역봉사단’ 창단이라는 결실을 낳았고, 이때부터 부부는 본격적인 점역 활동에 뛰어들어 시각장애 학생들의 눈이 되어주기 시작했다.

손끝에 새겨진 2만 시간, 시각장애인의 ‘눈’이 되다

점역은 고도의 집중력과 끈기가 필요한 작업이다. 수많은 기호와 숫자가 뒤섞인 수학, 과학 교재를 시각장애인이 읽을 수 있는 점자로 변환하는 과정은 그야말로 인고의 시간이다. 부부는 매주 수요일마다 전국의 맹학교를 지원하기 위해 컴퓨터 앞에 앉아 한 자 한 자 정성을 다해 점자를 찍어 내려갔다. 기관을 통한 공식적인 요청뿐만 아니라, 개인적으로 절박하게 연락해 오는 학생들의 부탁도 단 한 번 거절하는 법이 없었다. 면접 대비 질문지부터 두꺼운 전공 서적까지, 부부의 손을 거친 도서들은 1,500권의 빛이 되어 전국으로 퍼져나갔다. 이들의 무상 점역 지원을 받은 덕에 한 시각장애 학생이 무사히 임용고시를 치르고 교사가 되기도 했다. 이 소식은 부부가 20년 넘게 묵묵히 봉사를 이어온 시간에 대한 가장 큰 훈장이 되었다.

재능기부로 넓힌 나눔의 영토

부부의 나눔은 점역에만 머물지 않고 다양한 재능기부로 뻗어 나갔다. 교직 경험을 살려 발달장애인들에게 성악을 지도하고, 패럴림픽 정식 종목인 ‘보치아(Boccia)’ 선수들의 연습을 도우며 장애인들의 든든한 조력자로 활동했다. 국내에서의 세심한 재능기부는 자연스럽게 국경 너머의 더 넓은 나눔으로 확장되었다. 2022년부터 인도네시아의 학생에게 매년 장학금을 후원하며 배움의 기회를 나누는가 하면, 최근에는 캄보디아 프놈펜에서 자신들의 전공을 가르치기도 했다. 연금으로 생활하는 검소한 형편이지만, 배움의 사각지대에 놓인 아이들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비행기에 오르는 부부의 의지는 해가 갈수록 더욱 뜨거워지고 있다.

비움으로 채워가는 삶, 가장 떳떳한 이름 ‘봉사자’

LG 의인상과 대통령표창 같은 묵직한 이름들이 따라붙지만, 부부는 여전히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라며 한 발 물러선다. 나눌 수 있는 손과 시간, 그리고 마음이 아직 남아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며 살아왔을 뿐이라고 말한다. 퇴직 이후의 삶을 ‘비움’이라 정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더 많은 것으로 채워졌다. 도움을 받았던 이들의 감사 인사와 그들이 일궈낸 결실들이 부부의 삶을 가득 채웠다. 보이지 않는 벽을 허물고 누군가의 내일을 조금 더 밝게 여는 일, 그 단단하고도 소박한 실천이 쌓여 이들의 시간을 만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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