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나라를 구한 손으로 다시 이웃의 허기를 채우다”

참전용사 정화일의 총성 대신 밥 냄새를 따라 걷는 시간

정화일

정화일

전장에서 병상으로, 그리고 다시 나눔의 자리로

정화일 씨의 삶은 대한민국 현대사의 굴곡을 그대로 품고 있다. 꽃다운 청춘을 전쟁터에서 보내며 국가를 위해 헌신했던 그는 퇴직 이후 뜻하지 않은 사고를 겪는다. 치료를 위해 머물던 병원에서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은 취약계층 환자들을 위한 무료 급식 봉사였다. 환자의 몸이었지만, 타인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분주히 움직이던 봉사자들의 모습은 그에게 전장의 기억보다 더 깊은 울림을 남겼다. “누군가를 위해 산다는 건 이런 것이구나.” 그 깨달음은 머뭇거림 없이 실천으로 이어졌다. 그렇게 그는 퇴원과 동시에 아내의 손을 잡고 봉사의 길에 들어섰다.

노병의 1만 시간, 흐트러짐 없는 성실의 기록

그의 봉사에는 요령이나 타협이 없다. 2008년부터 2017년까지 지역 의료원 급식소에서 조리와 배식, 설거지를 맡으며 기본을 다졌다. 2018년부터는 지역 노인복지관에서 안내 봉사로 자리를 옮겼다. 점심시간이면 400여 명의 어르신이 찾는 식당에서 그는 하루 네 시간씩 서서 질서를 살핀다. 93세라는 나이가 무색할 만큼 단정한 자세다. 청력이 약해져 말이 또렷이 들리지 않는 상황에서도 그는 눈빛과 손짓으로 정중함을 전한다. 1,407회라는 숫자는 단순한 출석 기록이 아니라, 비바람 속에서도 한결같이 이어온 발걸음의 증거다.

기초연금보다 넉넉한 마음, 청년처럼 뜨거운 열정

정화일 씨는 기초연금에 의지해 생활하는 소박한 형편이지만, 마음의 곳간만큼은 세상 그 누구보다 풍요롭다. 봉사에 관해 이야기할 때마다 소년처럼 반짝이는 그의 눈빛에서는 청년 못지않은 생명력이 느껴진다. 많은 이가 노년의 상실감과 고독을 호소할 때 그는 스스로를 태워 타인의 길을 밝히는 등불이 됨으로써 그 그림자를 걷어냈다. 그에게 봉사는 거창한 희생이 아니다. 대가나 수식어 또한 바라지 않는다. 그저 자신이 여전히 누군가에게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 내가 건넨 안내 한마디에 이웃이 편안하게 식사할 수 있다는 실감이 그를 다시 일으켜 세운다. 그래서 그는 오늘도 복지관으로 향한다. 전쟁의 참화 속에서 기적처럼 살아남은 시간이 결국 이 따뜻한 한 끼의 평화로 이어진 듯, 그는 묵묵히 밥 냄새가 번져나가는 자리를 지킨다. 그 고소한 냄새는 그에게 어떤 훈장보다 향기로운 인생의 향기다.

평화의 완성, 가장 낮은 자리에서 피어난 꽃

정화일 씨가 써 내려간 1만 시간의 대기록은 우리 사회에 묵직하고도 조용한 질문을 건넨다. 진정한 국가 유공이란 과연 무엇일까. 젊은 날 총을 들어 국토를 수호했던 그는 이제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웃의 끼니를 지키며 또 다른 형태의 평화를 완성하고 있다. 퇴직 이후 찾아온 공허를 나눔의 온기로 채우고, 노년의 고독을 헌신이라는 무기로 이겨낸 노병의 뒷모습은 화려하지 않기에 더욱 깊은 울림을 준다. 잿더미 위에서 오직 성실함 하나로 다시 일어섰던 대한민국처럼 그의 1만 시간은 숭고하고 아름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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