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이주 여성들의 친정엄마가 된 의사 이종민”

3만명의 탄생을 지키고 국경 너머 소외된 삶까지 보듬은 40년의 삶

이종민

이종민

이종민

말이 통하지 않는 슬픔, 국제부인모임의 시작

이종민 원장의 가슴 깊은 곳에는 잊히지 않는 한 장면이 있다. 90년대 초, 언어장벽과 문화 차이로 인해 극심한 고립감을 느꼈던 한 이주 여성 산모와의 만남이다. 입덧이 심해 탈진한 상태에서도 시어머니의 반대로 고향에 가지 못하던 산모를 보며, 이들에게 필요한 것은 단순한 약이 아니라 소통과 연대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는 2004년부터 ‘국제부인모임’을 만들어 한국 요리와 풍습을 가르치고, 외로운 이주 여성들의 정서적 유대를 돕는 후견인 자매결연을 모색했다. 말은 서툴렀지만 웃음은 통했다. 타국에서 흘린 눈물이, 연대의 온기로 조금씩 마르기 시작했다.

이주 여성의 친정으로 향한 왕진 가방

이 원장의 헌신은 병원 진료실에만 머물지 않았다. 향수병에 시달리는 이주 여성들을 선발해 가족과 함께 친정에 다녀올 수 있도록 비용의 절반을 부담하는 ‘친정 나들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것이다. 그는 단순히 비행기표를 끊어주는 데 그치지 않고, 의료진과 약품을 대동해 고향 마을로 직접 찾아갔다. 좋은 약과 의료진이 귀한 동남아 오지에서 이 원장의 방문은 마을 전체의 축제이자 기적이었다. 이주 여성은 마을 사람들에게 ‘의사를 데려온 딸’로서 최고의 환대를 받으며 금의환향했다. 그 경험은 이주 여성이 한국으로 돌아와 다시 삶을 시작할 수 있는 단단한 자존감이 되었다.

필리핀과 캄보디아를 적신 인도주의의 물결

한 사람의 산모로부터 시작된 인연은 2007년 이후 본격적인 해외 의료 지원으로 이어졌다. 매년 필리핀과 캄보디아 등 의료 취약 지역을 정기적으로 방문해 무료 진료소를 열었다. 그가 이토록 해외 의료 봉사에 진심인 이유는 역시 사람 때문이다. 특히 그의 기억 속엔 20년 전 해외봉사지에서 만난, 온몸에 결핵이 퍼져 체중이 겨우 10여 킬로밖에 나가지 않던 청년이 깊게 박혀 있다. 죽음을 초월한 듯 맑은 눈빛을 가졌던 그 청년을 차마 데려오지 못했던 미안함은 그가 지금까지도 쉼 없이 청진기를 들고 국경을 넘는 원동력이 되었다.

‘희정복지재단’, 부모님의 뜻을 잇다

이 원장의 나눔은 부모님으로부터 물려받은 고귀한 유산이다. 전쟁 직후 피난민들이 자리 잡을 수 있도록 애쓰셨던 아버지와 6남매를 키우며 남의 자식까지 가르치지 못한 것을 평생 미안해하셨던 어머니. 그는 부모님의 함자에서 한 자씩을 따 ‘희정복지재단’을 설립했다. 개인 소유의 옛 병원 건물을 시에 기부하고, 체계적인 봉사 시스템을 갖춰 치매 노인 보호와 이주 여성 교육에 힘쓰고 있다.

“다시 태어나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로”

이 원장은 최근 1년 전, 산부인과 의사로서 가장 큰 환희였던 분만을 그만두었다. 산모와 아이의 생명을 오롯이 책임져야 했던 수십 년의 시간은 전화 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뛸 만큼의 큰 압박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단호하게 말한다. 다시 태어나도 생명을 살리는 의사가 되겠다고. 나누며 얻는 기쁨을 ‘리크리에이션(Re-creation)’이라 표현하는 그의 삶은, 우리가 서로를 향해 어떤 마음으로 살아야 하는지를 보여주는 가장 아름다운 교과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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