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11의 비극 속에 피워낸 결심
김동해 원장의 인생을 바꾼 것은 2001년 9.11 테러였다. 전 세계가 증오와 갈등으로 요동칠 때, 그는 역설적으로 ‘사랑’을 생각했다. 이듬해 처음으로 파키스탄을 찾았고,
그곳의 처참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한국에서는 간단한 수술로 고칠 수 있는 백내장이 그곳에서는 평생 어둠 속에 살아야 하는 사형선고와 같았다. 길거리에는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들이 방황하며 돌아다니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동해 원장은 안과 의사로서의 소명을 다시 썼다. 모든 사람이 함께 보는 밝은 세상을 만들자는 결심은 그렇게 23년의 긴 여정으로 이어졌다.
기술이 아닌 기도로 일궈낸 기적의 순간들
해외 봉사 현장의 환경은 국내 대학병원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열악하다. 전기가 끊기는 일은 다반사. 장비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오지에서도 김 원장은 메스를 놓지 않았다. 178회의 해외 캠프를 다니며 현장을 지킨 그의 등에는 늘 땀이 마를 날이 없었다. 하지만 수술 다음 날, 거즈를 떼어낸 환자가 처음으로 가족의 얼굴을 알아보고 아이처럼 기뻐할 때 김 원장은 비로소 의사로서 가장 큰 행복을 느꼈다.
나눔으로 비로소 완성된 인술
김 원장은 단순히 병을 고치는 데 그치지 않고, 나눔의 시스템을 만드는 데 집중했다. 사비로 파키스탄 등 11개국에 비전케어 지부를 설립하고 고가의 의료 서비스와 장비를 지원했다. 그는 “우리가 떠나도 현지인들이 스스로 눈을 뜰 수 있어야 한다”는 신념으로 현지 의료진 교육에 매진했다. 지금까지 150명이 넘는 현지 안과 전문 인력을 훈련시켰고, 이들은 각국에서 김 원장의 손길을 대신하고 있다. 그는 “자신의 기술뿐만 아니라 비용까지 스스로 부담할 때 진정한 나눔이 완성된다”라고 강조하며, 헌신의 가치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서 왔다.
길 위에서 발견한 생의 가치
일 년의 절반 이상을 타국의 거친 현장에서 보내는 삶은 개인적으로 큰 희생이 따르는 일이었다. 명동의 병원을 비우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병원 경영은 어려워졌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늘 미안한 가장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자신의 기술이 가장 절실한 곳을 향해 떠나는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국내 노숙인들을 위한 안과 진료까지 세심히 챙기며 6,000시간이 넘는 봉사 시간을 쌓아온 그의 발자취는 우리 사회에 사람이 사람에게 줄 수 있는 가장 정직하고 고귀한 위로가 무엇인지 몸소 보여준다.
가장 정직한 흔적, 비움으로 채운 삶의 품격
이제 김동해 원장은 단순한 수술 집도의를 넘어 실명 구호의 상징적인 존재가 되었다. 호암상을 비롯한 수많은 상훈이 그의 뒤를 따르지만, 그는 여전히 “우리는 그저 돕는 도구일 뿐”이라며 몸을 낮춘다. 23년 전 파키스탄의 모래바람 속에서 가졌던 그 초심을 잃지 않기 위해, 그는 오늘도 먼지 쌓인 수술 도구를 닦는다. 누군가의 무너진 세상을 다시 세워주고 보이지 않던 내일을 보이게 해주는 그의 헌신은, 비워낼수록 더 환해지는 삶의 가치를 증명하는 우리 시대의 가장 따뜻한 흔적으로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