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훈장 석류장故임순득

못 배운 게 평생의 한, 다 주고 가렵니다

故임순득

지금은 고인이 된 임순득 할머니는, 살아생전 버스비가 아까워 무거운 짐을 이고 먼 거리를 걸어 다닐 만큼 매사에 근검절약하며 열심히 돈을 모았다. 주변에서 이제 좀 쓰며 살아도 된다고 했지만 할머니는 요지부동이었다. 평생 배우지 못한 것이 한이었던 할머니는 그렇게 모은 전 재산을 충북대학교에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할머니에게는 그것이 삶의 목표이자 행복이었다.

가족 생계를 위해 밤낮으로 행상

6.25 전란 중 남편과 사별한 故 임순득 할머니는 홀로 시어머니와 어린 딸을 부양해야만 했다. 콩나물, 두부, 묵 등 팔 수 있는 건 모두 갖고 나가 행상을 했다. 가진 재산도, 특별한 기술도 없던 할머니가 유일하게 할 수 있는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벌기 위해 이른 아침부터 늦은 밤까지 발이 부르트도록 돌아다녔다.

악착같이 모으고 또 모으고

쉼 없이 일을 하고 절약한 덕분에 형편은 조금씩 나아지기 시작했다. 할머니는 작은 구멍가게를 열고, 허리띠를 졸라매며 한 푼 두 푼 모은 돈으로 농지도 샀다. 재산이 어느 정도 모여 이제는 본인을 위해 쓰는 재미를 누릴수 있었지만 할머니는 여전히 근검절약하며 이를 스스로에게 허락하지 않았다.

억척 할머니의 통 큰 기부

1999년 1월의 어느 날, 할머니는 평소 품어왔던 결심을 행동으로 옮겼다. 당시 시가로 12억 원에 달하는 5층 건물을 충북대학교에 기증한 것. 후학들은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아픔을 겪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에 한 일이었다. 또한 임 할머니는 자신의 팔순 잔치를 위한 돈까지 고스란히 장학금으로 내놓았다.

이제 매일 학교에 갑니다

충북대는 ‘임순득 장학기금’을 조성해 2013년까지 163명의 학생에게 3억 6천만 원의 장학금을 지급했다. 그리고 2012년 12월, 숙환으로 할머니가 별세하자 생전의 숭고한 뜻을 기리기 위해 학교장으로 장례를 치르고 캠퍼스 내 묘역에 안장했다. 평생 학교가는 게 꿈 이었던 할머니는 이제야 매일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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