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피땀 흘린 첫 수확물 이웃과 함께…
“배고픈 설움 아니까” 임형노·공양덕 부부(‘50/‘57)
임형노·공양덕 부부(
‘50/‘57)

임형노·공양덕 부부(‘50/‘57)

“배고픈 설움과 고통을 누구보다 잘 아니까 나누는 거죠.”

전남 화순군 이양면 초방리에 사는 임형노(70)·공양덕(63)씨 부부는 올해로 20년째 땀 흘려 농사지은 쌀을 불우이웃에게 내놓고 있다. 지독하게 가난했던 젊은 날이 부부를 ‘기부천사’로 이끌었다. 임씨는 1979년 광주에서 택시운전을 시작했다. 이른 새벽부터 늦은 밤까지 일했지만 아내와 두 자녀, 고향에 남은 동생들과 할머니를 부양하느라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웠다. 그러던 중 5·18 광주민주화운동이 일어나자, 영화 ‘택시 운전사’처럼 그도 시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기도 했다. 계속되는 생활고에 임씨는 가족을 데리고 일자리가 많다고 소문난 전남 여수로 향했지만, 그곳에서의 삶도 힘겹긴 마찬가지였다. 임씨는 공사장 막노동, 연탄 장사 등 닥치는 대로 일을 했고, 부인 공씨도 식당 허드렛일부터 세차장, 공장 등 돈 되는 일이라면 마다하지 않았다. 자린고비 생활을 하며 악착같이 돈을 모았고, 돈이 조금 모아지면 고향에 논밭을 야금야금 사들였다. 스스로를 돌볼 겨를이 없던 탓에 임씨는 결국 건강 이상이 왔고, 부부는 귀향을 결정했다.

그동안 모아둔 작은 땅과 주변에 땅을 빌려 농사를 지었다. 부지런함이 몸에 밴 부부는 해뜨기 전 논밭에 나갔고, 해가 지면 자동차 라이트를 켜놓고 일을 했다. 첫 수확을 얻자마자 부부는 바로 불우이웃을 도왔다. 먹을 게 없어 힘겹던 시절의 다짐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임씨는 “젊은 시절 우리처럼 힘든 처지에 놓인 이웃에게 따뜻한 밥 한 끼 먹여주기 위해 기부를 결심했다”고 말했다. 부부는 지금까지 쌀 800가마, 고구마 540가마, 라면 100박스를 기부했다. 처음엔 기부 사실이 알려지는 게 부끄러워 면사무소 주차장에 몰래 놓고 사라지기도 했다. 임씨는 “나눔은 여유가 있어서 하는 게 아니다”며 “오히려 부족한 것을 나눌 때 행복이 더 커진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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