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내서도 의료봉사 이어간 박진석(57세)
박진석(57)

박진석 (57)

필리핀 빈민 12만명 진료한 '필리핀의 슈바이처'

“이 아픔이 오히려 복이 되게 하시고 건강할 때 볼 수 없던 하늘의 신령한 것을 보게 하소서.” 1996년부터 2009년까지 필리핀에서 목회자이자 의사로 활동한 박진석 씨는 환자를 진료할 때면 두 손을 잡고 기도를 올린다. 박 씨는 진료하는 환자가 불교든 천주교든 종교를 막론하고 기도를 올린 다. 무신론자도 예외는 아니다. 그는 “감사히 많은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기도를 거부당한 적은 없었다”고 했다. 필리핀과 박 씨의 인연은 1991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한국에서 목원대 신학과를 나온 박 씨는 그해 사람을 살리는 선교자가 되고 싶다는 꿈을 품고 필리핀 명문 라살대 의대에 입학했다. 영어권에서 의학 공부를 하고 싶었지만, 집안이 가난해 필리핀 유학이 최선의 선택지였다. 이후 그는 1996 년부터 주 1회씩 병원 치료를 받지 못하는 빈민가를 방문해 결핵이나 만성질환 환자를 치료했다. 매달 환자 500여 명이 몰려들었다. 그러다 의료 선교의 뜻을 함께하는 김용주 목사를 만나게 되면서 스케일이 커졌다. 2003년 아예 의료선교활동을 목적으로 하는 종합병원을 세운 것이다. 내과, 외과는 물론 소아과, 산부인과 등 다양한 진료과를 갖춰 필리핀에선 가장 규모가 큰 축에 드는 병원이었다. 박 씨는 필리핀 교회 헌금과 후원금으로 병원을 운영하며 가난한 이들 진료를 이어가면서 12만명이 넘는 필리핀 빈민들을 진료했다. 그가 ‘필리핀의 슈바이처’로 통하는 이유다. 박 씨는 2009년 한국으로 돌아와선 한국 의사국가시험에 응시해 의사 자격을 땄다. 사천에 의원을 차리고도 의료봉사를 이어갔다. 매달 의사가 없는 마을이나 섬 지역을 찾아가 의료 봉사를 이어갔다. 박 씨는 “의사가 돼 잘살아보겠다는 생각은 한 번도 한 적이 없다”며 “가난한 사람들을 치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 의사가 된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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