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포목집 할매'의 아름다운 人生…
마지막 가는 길까지 나누고 떠난 故 손봉순(향년 83세)
故 손봉순(향년 83)

故 손봉순(향년 83)

친자식과 똑같이 길러 결혼까지

선행의 시작은 1964년쯤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시 시장 한 켠에서 포목 좌판을 하던 고(故) 손봉순 씨는 담벼락 구석에 앉아 울던 열 살 남짓 여자 아이가 끝내 눈에 밟혔다. 불우한 자신의 어린 시절이 생각나 그냥 두고 올 수 없었다. 이 여자아이를 집에 데려가 씻기고 먹였다. 이때쯤부터 손 씨는 주변 복지시설 등을 통해 돌봐줄 사람 없는 딱한 아이를 집으로 데려 와 정성으로 키워냈다. 그렇게 마음으로 낳은 자식만 모두 열둘로 불어났다. 친자식과 똑같이 학교 보내고, 잘 먹이고 길러 결혼까지 시키고 출가 후에도 음식 만들어 갖다주고, 병간호해 주며 가슴에 품어 평생 자식으로 키웠다.

우리 시장에서 '착한 할매' 모르면 간첩이지요

경북 경주시 중앙시장에서 포목점을 운영한 손 씨는 '나눔 큰 손'이었다. 어려운 아이들을 거둬 키운 건 물론이고, 딱한 사정의 이웃에도 따뜻한 손 길을 내미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손 씨는 1984년부터 형편 때문에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동거 부부 138쌍에게 사비를 들여 한복을 비롯한 예복을 선물했다. 사회복지시설에서 지내는 어려운 이웃에도 마음을 썼다. 양로원 등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활동을 하고 건넨 위문품만 500만 원어치 였다. 독학 청소년이나 소년소녀 가장엔 학용품(300만 원어치)을, 무의탁 노인이나 관내 50개소 양로시설엔 김장 지원금(200만 원)을 건넸다. 손 씨 의 나눔은 가난한 학생들에게도 이어졌다. 1995~1998년 사이엔 학생들의 대학 등록금 1,000만 원을 지원했고, 특히 본인이 다녔던 한림야간중고등 학교엔 장학금 100만 원과 책상 및 의자 100만 원어치를 전달하기도 했다. 지인들과 함께 동네 청소를 하거나 사비를 들여 노인 그림 그리기 대회나 서예 대회를 열기도 했다고 한다. 부녀 소방 대장, 새마을부녀회장 등으로도 활동했다. 이 같은 공로를 인정받아 새마을 훈장이나 내무부 장관 표창을 받기도 했다. 손 씨는 지난 2018년 하늘나라로 떠났다. 그러나 마지막 가는 길에도 '포목집 할매'의 나눔 정신은 빛났다. 본인이 운영했던 가게의 포목을 좋은 일에 써달라는 유지를 남긴 것이다. 딸은 작년 2월 언론 인터뷰에서 “어머니의 뜻을 받들어 물품을 기탁하겠다. 좋은 곳에 써달라”며 손 씨가 남긴 비단 등 원단 모두를 경주시에 기부했다. 손 씨의 50여 년 나눔 인생은 마지막까지도 빛난 것이다. 경주시 관계자는 “고인의 살아생전 지역 사랑과 선행에 깊은 감사를 표하며, 유지를 받들어 기탁한 물품을 신라문화제 등 좋은 일에 쓰겠다”고 밝혔다.

목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