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훈장 목련장문숙

“하늘에 있는 아들도 이 엄마를 칭찬해 줄 거예요”

문숙

아들 잃은 슬픔을 홍원목장에 실어

문숙 씨는 1924년 평안북도 용천군에서 태어났다. 1947년 월남 후 부산 등지에서 구멍가게를 운영하던 문 씨는 전쟁 직후인 1954년 물류업의 앞날을 내다보고 화물운수업을 시작했다. 예상이 적중해 사업은 날로 번창했고, 다른 사업을 벌일 수 있을 정도로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떠나온 고향을 그리워하던문 씨는 나중에 돈을 모으면 꼭 농촌에 내려가 살고 싶다는 자신의 꿈을 위해 1969년, 운수업을 계속하면서 시범적으로 인천 근교에 소규모 목장을 세워 낙농업에 뛰어들었다. 문 씨는 고려대 농대에 진학한 둘째 아들 명훈 씨를 유난히 아꼈다. 문 씨의 농촌 진흥에 대한 꿈을 이뤄줄 수 있는 아들이기도 했다. 그런 아들이 1977년 6월, 사고로 물에 빠져 숨지고 말았다. 문 씨는 아들을 잃은 슬픔에 번창하던 사업을 정리하고 경기도 화성으로 내려가 홍원목장을 열고 젖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그때가 1979년이었다.

265명에게 2억4천만 원 지원한 명훈장학회

그해 문 씨는 둘째 아들의 이름을 딴 ‘명훈장학회’를 설립하고, 아들의 모교인 고려대 농대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했다. 가족들은 그의 슬픔이 조금이라도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문 씨의 결정을 두말없이 지지했다. 명훈장학회는 설립 첫해 8명에게 25만 원씩 지급한 것을 시작으로, 매년 6~10명의 장학생을 배출해 현재까지 265명의 ‘아들’에게 총 2억2천만 원의장학금을 지원했다. 또 이와는 별개로 고려대 발전기금으로 2억4천여만 원도 기부했다.

상실의 고통을 생명존중사업으로 승화시킨 ‘어머니’

2010년, 남편이 세상을 떠난 뒤 문 씨는 자신의 재산을 사회에 환원하기로 결심했다. 2011년 5월 가톨릭중앙의료원에 ‘생명존중기금’ 1억 원을 기부한 것을 시작으로, 10월에는 고려대에 67억 원 상당의 목장 부지 9,200평을 의학연구를 위해 기부했다. 고려대에서는 문 씨의 기부금으로 지상 7층, 총면적 754,455m² 규모의 ‘문숙의학관’을 신축했다. 또한, 2012년부터는 새터민과 연변지역의 농업 전공 학생들에게도 장학금을 지급하기 시작하여 현재까지 총 13명의 학생에게 도움을 줬다. 문 씨는 최근 휠체어를 타고 다니고, 말을 길게 잇지 못할 정도로 건강이 악화됐다. 그러나 문 씨가 펼쳐온 장학사업과 생명존중사업의 기본 정신은 그에게 수혜를 받은 수많은 사람들의 숫자만큼이나 우리 사회의 희망의 씨앗이 되어 널리, 그리고 오래도록 기억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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