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대통령표창이흥배

장애인들과 동고동락하는 두 집 살림 환경미화원

이흥배

나들이 봉사로 맺어진 인연

1991년, 이흥배 씨는 장애인 교회에서 야학봉사를 시작하면서 처음 장애인들과 인연을 맺었다. 당시 스물한 살로, 합기도 사범을 하던 때였다. 하루는 야학 수업을 끝내고 나서 30대 장애인 학생을 집에 데려다주게 되어 가는 길에 바람도 쐬어 줄 겸 한강 둔치를 들렀더니, 학생이 한강을 직접 본 게 감격스럽다며 엉엉 울더란다.
“그렇게 좋아하는 것을 보고 충격을 받았죠. 그때부터 장애인분들을 모시고 나들이하러 다니기 시작했어요.”
그렇게 시작한 장애인 나들이 봉사가 올해로 벌써 23년째다. 얼떨결에 나들이 첫 멤버가 된 그 학생은 지금도 함께 여행을 다닌다. 야학교사, 장애인 이동도우미 등 봉사를 하면서 알게 된 장애인들이 한 두 명씩 합류하면서 지금은 멤버가 8명으로 늘었다.

‘사랑방’에서 장애인 네 명과 동고동락

이 씨는 2004년부터 은평구 수색동에 전셋집을 얻어중증장애인 네 명을 돌보고 있다. 이 씨가 ‘사랑방’의 첫 번째 멤버인 이윤호 씨를 만난 건 1999년 장애인시설 봉사활동을 하면서다. 뇌병변장애 1급인 윤호 씨는 당시 경기도 김포의 한 장애인 시설에서 지내고 있었는데, 구타를 당하는 등 심한 고초를 겪었다고 한다. 결국 시설 운영자는 비리가 드러나 구속되고 시설은 폐지되었다. 가족들은 있을 곳이 없어진 윤호 씨를 다른 시설로 옮기려 했지만, 윤호 씨는 ‘시설에 죽어도 가기 싫다’며 완강히 버텼다. 이 사실을 알게 된 이 씨는 400만 원에 전셋집을 구해 윤호 씨를 데려와 돌보기 시작했다. 그 후, 이 씨가 중학교 시절부터 알고 지내던 중풍환자 하 씨, 고향 농가에서 일꾼으로 부림을 당하던 지적장애인 김 씨, 그리고 뇌병변장애인인 황 씨까지 함께하게 되면서 지금의 ‘사랑방’ 멤버가 완성됐다.

작은 일에도 행복해하는 사랑방 가족들에게 항상 감사해

이 씨는 직장과 집이 사랑방과 가까워 하루에도 몇 번씩 왕래하며 사랑방 식구들의 끼니와 잠자리를 챙긴다. 처음 이 씨의 아내는 펄쩍 뛰며 반대했지만, 지금은 식사준비를 할 때면 사랑방에 갖다 줄 반찬까지 넉넉하게 만들어 놓는다.
“제가 해준 아주 작은 일에 그토록 감격하고 좋아하는 그분들의 모습을 보니 그렇게 행복할 수가 없었어요.”
이흥배 씨는 지금까지 자신이 해 온 일들이 봉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봉사가 아니라 자신이 하고 싶어서 한 일이라는 것이다. 사랑방 운영은 언제까지 할 거냐는 질문에 이 씨는 확신에 차서 대답했다.
“그 분들은 저에게 가족입니다. 돌아가실 때까지 그 분들과 함께 할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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