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기적처럼 찾은 삶, 남은 인생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
원승재(68세)

원승재(68세)

생사의 고비를 넘긴 후 봉사하는 삶 결심

큰 어려움 없이 평탄하게 살아오던 원승재 목사는 27세이던 1972년, 코의 모세혈관이 터지는 병이 생겨 생사의 기로에 서게 되었다. 그는 당시 현대의학으로 치료가 불가능하다는 판정을 받았고 체중이 43kg까지 빠지며 더 이상 삶에 대한 희망을 갖지 못하였다.

그러나 원승재 목사는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하였고, 남은 인생을 세상 사람들을 위해 살겠다고 다짐하였다. 그는 1980년부터 ‘부산 소망성결교회’ 목사로 있으면서 지역 사회에 어려운 일이 생기면 목회자, 교인들과 함께 팔을 걷고 봉사 활동을 펼치고 있다.

열차 전복 사고와 항공기 추락 사고 때 인명 구조 활동 펼쳐

큰 병을 앓고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한 원승재 목사. 사회에 좋은 일을 하겠다고 결심한 그는 자신이 사는 지역에서 큰 사고가 나자 재빠르게 인명 구조 활동에 나섰다. 1993년 3월 28일, 부산 구포역 하행선에서 무궁화호 열차가 선로 노반 침하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하자 원승재 목사는 현장을 찾아가 생존자 30여 명을 구조하였다. 그는 당시 열차 전복사고 현장에서 8시간 동안 밤새 구조 작업을 벌였고, 그 장면이 TV 뉴스로 나갔다. 방송을 본 당시 김영삼 대통령이 감명을 받아 원승재 목사에게 감사의 편지를 보내기도 하였다.

2002년 4월 15일에는 중국 민항기가 김해공항에 착륙을 시도하던 중 신어산에 추락하는 사고가 발생하자 원승재 목사는 현장을 찾아가 119대원들과 함께 시신을 수습하였고, 병원에 입원 중인 중상자를 찾아가 위로하기도 하였다. 또한 그는 1998년부터 2000년까지 UN참전용사를 초청하여 평화통일 행진 등 다양한 행사를 열어 그들의 위상을 높이기도 하였다.

이재민 구호 활동 등 지역 사회 어려운 이웃들을 보듬다

2003년 8월에는 태풍 ‘매미’가 몰아닥쳐 다수의 이재민이 발생하였다. 분산 가덕도 신창마을에 이재민이 많이 발생하자, 원승재 목사는 목회자 7명과 함께 이재민 가정 300여 곳에 생필품을 전달하고 침수된 가택을 수리하는 등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2005년에는 스리랑카에 대지진이 발생하자 부산 대남병원 의료진 5명과 현장을 방문하여 이재민 3,000여 명의 치료를 돕고, 이재민 가정 12,000곳에 의류와 생필품, 의약품을 전달하는 등 이재민들의 아픈 마음을 보듬어주었다.

교인 30여 명의 작은 교회를 운영하며 고령의 나이에도 지역 사회에서 열정적으로 활동하고 있는 원승재 목사. 순수한 희생정신과 투철한 봉사정신으로 소외되고 낙후된 지역을 찾아다니며 이웃들과 동고동락하는 그의 모습은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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