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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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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서른 살부터 시작한 이발 봉사, 칠순을 훌쩍 넘긴 사랑의 이발사
조금규(75세)

조금규(75세)

이발조차 못 하는 어려운 사람들 찾아 이발 봉사 시작

1968년부터 부산에서 이발사로 일하는 조금규 씨는 돈이 없어 이 발조차 하지 못하는 어려운 형편의 사람들에게 이발을 해주겠노 라 결심한다. 부산에서 ‘금강 이용원’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1968 년 인근 양로원이나 보육원의 위치를 수소문해 찾아다녔다. 그가 거주하던 부산 남구 지역에는 양로원과 보육원이 없어, 멀리 떨 어진 동래구에 있는 요양원을 직접 찾아가 관계자에게 이발 봉사 의 뜻을 밝히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동래요양원’에서 47년간 이 발 봉사를 해오고 있다.

매월 이발 봉사하러 오는 조금규 씨를 기다리는 어르신들

조금규 씨는 47년째 매월 둘째 주 화요일, 동래요양원을 방문해 어르신들의 머리를 잘라드리고 있다. 이곳에서만 이발 봉사를 2,600여 회 진행하였고 13만 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그의 이발 봉 사를 받았다. 이 외에도 경남보육원, 애광원, 양로원 등을 찾아 휴일마다 이발 봉사를 해왔고, 지금까지 2,000여 회 동안 10만 여 명이 혜택을 입었다.

1988년 서울올림픽이 있기 전까지 우리 사회에는 자원봉사자 가 많지 않았다. 그러나 조금규 씨는 1968년부터 자발적으로 소 외된 이웃을 찾아 자신의 재능을 기부하는 봉사를 시작하였다. 당시 조 씨가 양로원에 이발 봉사를 하러 가면, 돈이 없어 이발 을 하지 못하는 어르신이 100여 명에 달하였다. 조금규 씨는 아 무도 찾지 않아 외로움을 안고 살던 양로원 노인들에게 자식보다 더 따뜻한 정으로 그들의 머리를 단정하게 만 져주었다. 어르신들은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정기 적으로 찾아오는 조금규 씨에게 가족 같은 따뜻한 정을 느끼며 늘 감사하다는 말을 아끼지 않았다.

그림

75세에도 여전히 봉사 활동으로 열정의 삶을 이어가

조금규 씨는 “매월 한 번씩 이발 봉사를 하러 양로 원을 방문하는데, 그때마다 저를 기다리고 있는 어 르신들의 눈빛이 잊혀지지 않는다”면서 “세월이 많 이 흘러 지금은 돌아가신 분들이 많지만, 당시 어 르신 한 분, 한 분이 아버지 같은 모습으로 애틋하 게 남아 있다”고 말하였다.

온화한 성품으로 자신을 낮추면서 무려 47년간 한결같이 이발 봉사를 해온 조금규 씨. 자발적으로 소외 계층을 찾아 봉사의 손길을 펼친 그는 지역 사회에서도 감사와 존경을 받는 이웃으로, 현재 7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봉사 활동으로 열정의 삶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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