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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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일본인도 존경하는 재일교포,자랑스러운 ‘철의 여인’
최복순(89세)

최복순(89세)

살 길 찾아 떠난 일본에서 탄광 생활하며 돈 모아

여성의 몸으로 이국 땅 일본에서 온갖 고난과 역경을 헤치고 ‘자랑 스러운 한국인’으로 우뚝 선 최복순 씨. 아흔 살의 나이, 무수한 세 월이 흘렀지만 그녀가 온몸으로 부딪히며 살아낸 생애는 고개를 절로 숙이게 할 만큼 숭고하다. 자수성가한 재일교포 최복순 씨는 한국인뿐 아니라 일본인도 존경하는 한국인이다.

일제강점기에 일본 후쿠오카현 이즈카시에서 태어난 최복순 씨는 가난한 한국과 피폐한 일본에서 살 길을 찾고자 발버둥 쳤지만 하 루하루 고통스런 생활을 이어갔다. 한국에 돌아와서도 가난에 허 덕이는 힘든 생활은 마찬가지였다. 최복순 씨는 가난을 벗어나기 위해 다시 일본으로 돌아가 온몸이 새까맣게 되는 탄광 생활을 시 작하였다. 그녀는 건장한 남자도 꺼리는 탄광에서 험난한 생활을 4년 동안 지속하였다. 결혼 후에도 최복순 씨는 가정을 돌보지 않는 남 편 탓에 그녀 혼자 시댁 식구들의 생계까지 책임져야만 하였다.

악착같이 일해 모은 돈으로 사업 키우고, 모국에 사랑 베풀어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막노동까지 마다하지 않은 최복순 씨는 절 약을 생활화하며 악착같이 일해서 돈을 모았다. 그렇게 마련한 자본금으로 최 씨는 일본에서 슬롯머신 사업을 시작하였고, 사 업을 크게 키우며 유기장 사업장과 급식소(돼지 가공 공장)를 운 영하였다.

슬하에 6명의 자녀를 둔 최복순 씨는 자녀들이 학업을 마치는 시점에, 자신의 힘들었던 어린 시절 을 생각하며 불우한 사람을 돕기로 결심하였다. 그녀는 일을 하다가도 자신의 어려웠던 시절이 생 각나면, 불시에 상점에 가서 닥치는 대로 옷을 사서 고아원이나 장애인 시설, 양로원 등에 익명으 로 기부하기 시작하였다. 최 씨는 1982년부터 매년 수차례에 걸쳐 영세민, 모자가정, 독거노인, 장 애인들에게 총 2억 4천여만 원을 기부하였다.

한국의 경로당 설립 지원, 재일동포의 모국방문 지원 등 펼쳐

최복순 씨는 고국의 노인들에게 조금이나마 도움을 주기 위해 한국의 경로당 등 복지시설 건립비를 지원해왔다. 1982년 산청군 단성면 ‘오암 경로당’ 건립 지원을 시작으로 7개의 경로당 건립에 후원 을 아끼지 않았다. 최 씨가 현재까지 경로당 지원 사업으로 내놓은 후원금만 2억 6천만 원에 이른다.

또한 최 씨는 한국의 조형물 건립비용으로 9,000만 원을 지원하는가 하면, 재일동포 500여 명의 모 국 방문을 지원하기도 하였다. 그뿐만 아니라 그녀는 나가사키에서 원자폭탄 피해를 받고 한국으 로 돌아가 치료를 받지 못한 피폭자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치료해주었다. 해방 후에는 일본에 돌아 가지 못한 재한 일본인 부인들을 일본으로 초청해 민족애를 초월한 뜨거운 인류애를 실천하였다.

일본에 살고 있는 최복순 씨는 여전히 고국의 소외되고 어려운 세대를 돕는 데 남다른 애정을 갖고 아낌없이 지원하고 있다. 타국에서 온갖 역경을 극복하고 어렵게 이루어낸 결실을 어려운 사람들 에게 베풀고 있는 최복순 씨. 그녀의 생애는 양국 국민들에게 가슴 깊은 울림과 감동을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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