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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낌없이 나눈 기부 인생, 다 주고 떠난 ‘신양 할아버지’
故 정석규(향년 85세)

故 정석규(향년 85세)

평생 검소하게 살면서 기부할 땐 아낌없이

“돈은 분뇨와 같아서 한곳에 모아두면 악취가 나지만 밭에 풍성하게 뿌리면 고루 수확된다.” 평소 자신이 가진 것을 어떻게 써야 하는지, 이 문장 속에 한 사람의 신조와 가치관이 담겨 있다. 그는 20년이 넘은 낡은 소파와 책으로만 가득한 작은 집에 살았다. 자주 가는 식당은 4,000원짜리 칼국수 집이고, 먹고 남은 음식은 가져간 플라스틱 통에 싸오곤 하였다. 자신을 위해서는 한 푼도 아끼면서, 평생 모은 돈을 모교에 아낌없이 기부한 사람, 바로 故 정석규 신양문화재단 명예이사장이다. ‘서울대 기부왕’으로 불리는 故 정석규 씨는 생전에 모교인 서울대학교를 비롯하여 ‘국제로타리’, ‘영등포노인종합복지관’ 등에 약 450억 원을 기부하였다.

44년간 451억 3천만 원을 이웃에게

1952년 서울대학교 화학공학과를 졸업한 정석규 씨는 1967년 ‘태성고무화학’를 설립하고 우리나라 고무산업을 발전시키며 기업을 성공리에 키웠다. 피땀으로 일군 태성고무화학을 자녀가 아닌 전문경영인에게 물려주어 기업 상속의 모범을 보이기도 하였다. 그는 예전에 후두암 수술로 성대를 제거하면서 타인과 의사소통이 힘들어지자, 인생을 되돌아보고 평소 생각해오던 공익사업을 하나씩 실천하였다. 정석규 씨는 하버드 대학의 수많은 도서관들을 보고 서울대학교에도 그러한 인프라를 구축하여 우수한 학생들을 나라의 인재로 키워야겠다는 생각으로 ‘신양문화재단’을 설립하고 200억대의 재단으로 키운 후 서울대학교에 기부하였다.

정석규 씨는 1987년부터 기부를 시작해 가정 형편이 어려운 서울대생 820여 명에게 총 25억 6천5백만 원의 장학금을 지원하였다. 그는 29년간 155억 원에 가까운 돈을 서울대학교에 기부하였고, 그의 기부금은 서울대학교 건물 설립, 학술 및 연구 지원뿐만 아니라 공대 공학상 시상기금, 서울대병원 난치병 연구기금, 공대 화생부 시상기금, 의과대학 연구기금 등으로 쓰였다. 이 밖에도 정석규 씨는 영등포 로타리클럽 사회봉사 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독거노인 등 빈곤층의 생계비와 난방비를 지원하였다. 또한 2002년부터는 12년간 조손가정 중고생 장학금으로 1억 8천만 원을 기부하고, 부산공업고등학교 생활관 건축을 위해 11억 원을 지원하는 등 폭넓은 기부 활동을 이어갔다.

서울대 학생들, 캠퍼스에 흉상 세워 고인 기려

서울대 학생들에게 ‘신양 할아버지’로 불리는 故 정석규 씨. 그의 생전에 서울대 학생들은 고마운 마음을 담아 합판 위에 그림을 그린 뒤 이것들을 모아 그의 대형 초상화를 만드는 작업을 진행하였다. 이 작업은 “선생님에게 많은 은혜를 받았지만 정작 우리가 해드린 것이 없으니 작은 정성이라도 모아보자”는 서울대 한 학생의 제안으로 시작되었다. 이 과정에서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모금을 시작하여 총 390명의 학생이 1,000만 원을 모아 지역공부방과 형편이 어려운 중고생 15명에게 전달하였다. 그의 검소한 삶과 나눔의 정신이 학생들을 통해 더 확산된 것이다.

나아가 학생들은 지난 2015년 5월에 세상을 떠난 정석규 씨를 추모하기 위해 흉상을 건립하기로 하고 자체적으로 모금 운동을 펼치기도 하였다. 서울대 공대 학생회는 “정석규 선생님의 노블리스 오블리제 정신을 기리기 위해 교내에 흉상을 건립할 것”이라고 밝혔다. 정석규 씨의 흉상은 서울대학교 관악캠퍼스 신양학술정보관 앞에 세워질 예정이다.

故 정석규 씨의 아호 ‘신양’은 ‘태양을 믿는다’는 의미다. 힘들어도 내일의 태양이 뜬다는 믿음으로 스스로 용기를 북돋던 故 정석규 씨. 그가 남기고 간 유산은 또 하나의 태양이 되어 세상을 밝게 빛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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