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무총리표창고준석

봉사란 함께 걷는 행복한 동행이다

고준석

“우리 말야. 맨날 이렇게 모였다헤어지지 말고,뭔가좋은 일 한번 해보면 어때?’
고준석 씨가 새로운 세상을 만나게 된 것은 회사 친목단체 모임에서 누군가 한 이 제안 때문이었다. 친한 동료들끼리 친목단체를 만들었는데,매번 무의미하게 만나 밥 먹고 노는 일로 시간을 보낼 것이 아니라,같이 좋은 일 한번 해보자고 한 것. 처음에는 인근에 있는 모자보건시설을 찾아가 경제적으로 어려운 홀로 된 엄마와 아이들을 돌보기 시작했다. 한달에 한 두번 찾아가는 일이 었지만 시간이 흘러 어린 아이들이 회원들의 도움으로 장성해 사회에 나가는 모습을 보며 봉사의 기쁨을 느끼게 되었다.
평범한 직장인이었던 고준석 씨는 이때까지 어려운 사람을 대할 기회가 별로 없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이 일을 계기로 세상에 어려운 이웃들이 너무도 많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고 했다. 그 때부터 고씨는 회사 내 6개의 봉사단체를 결성하며 맹렬한 봉사활동을 펼쳐왔다. 그 덕분에 다양 한 이웃들이 그와 인연을 맺고 도움을 받고 있다. 그 중에는 피부색이 다른 사람들도 있다.
“2000년대 초부터 도금공장,두부공장 둥을 중심으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많아졌는데,우연히 그분들이 열악한 환경과 어려움 속에 일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됐어요. 의식주보다 당장 하고 싶은 말을 할 수 있게 도와주는 게 더 절실해 보였죠. 그래서 퇴근하면 그들을 찾아가 한글을 가르쳤어요. 임금체불 같은 억울함이 있거나 필요한 것이 있으면 분명히 말할 수 있게 말이죠.”
낯선 이국땅에서 아무도 챙겨주지 않는 그들의 생일상을 차려주고 매년 홀로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이들과 함께해 온 고준석 씨. 늘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 고충을 해결해주다 보니 어떤때는 불법체류 문제까지 상담하는 전문가 아닌 전문가가 되어야 했다. 그렇게 도움을 받은 외국인 근로자들이 고씨를 잊지 않고 한글로 쓴 편지를 보내오거나,새  집을 지었다며 본국에 초대할 때면 말로다 표현 못할 보람을 느낀다.
같은 한국인이지만 말을 못하는 이들도 있었다. 바로 농아인들이다. 고씨가 거주하는 광양지역 에는 농아지원단체가 없어 농아인들이 자신의 의사를 전하기 위해서는 멀리 순천지역에 있는 단체의 도움을 얻어야 했다. 이를 알게 된 고준석 씨는 독학으로 수화를 배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자신이 배운 수화를 뜻이 있는 일반인들에게 가르쳐 광양지역에 농아인 협회가 세워지고 농아인들에게 편리하고 신속하게 도움을 줄 수 있도록 했다.
올 봄 고준석 씨에게는 잊을 수 없는 일이 있었다. 지난 2003년부터 돕고 있던 중중 장애인 3남 매의 수학여행이었다. 학교에서 휠체어를 타는 아이들의 안전문제 때문에 수학여행을 허락하지 않으려 했기에, 고씨는 아이들의 안전을 책임지겠다며 회원들과 함께 연차를 내고 수학여행에 따라나섰다.
“손을 보태겠다고 삼남매의 어머니까지 함께 갔는데 마침 마지막 날이 어머니 생일이라 우리 회원들이 조촐한 파티를 준비했어요. 근데 아이들이 우리 몰래 편지를 써 와 읽어주더라구요. 낳아 주신 엄마가 너무 고맙다고, 제주도에 오는 게 꿈이었는데 아저씨들 덕분에 오게 돼 고맙다고…. 그 편지가 너무 기특하고 절절해서 어머니도 울고,회원들과 저도 애들이랑 같이 울고 말았어요.”
바쁜 직장생활 중에도 틈나는 대로 이웃을 찾아 달려가는 고준석 씨. 그는 봉사하는 사람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모든 사람이 자기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것이 봉사라 말한다. 1년 365일이 다 봉사하기 좋은 날이라는 고준석 씨에게 봉사는 특별한 일이 아니다. 그저 조금은 불편을 겪는 이웃들과 발을 맞춰 함께 걷고,함께 웃는 따뜻한 동행일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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