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박종월, 안효숙 부부

“세상 구석 구석 빛과 희망이 되고 싶어요”

박종월, 안효숙 부부

국민추천포상 시상식이 진행 되던 날, 눈에 띄는 부부 한 쌍이 있었다.
바로 동글동글한 렌즈로 세상을 밝혀주는 안경사 박종월,안효숙 부부. 오랜 세월 같은 뜻,같은 마음으로 함께 한 부부는 ‘생애 다시 없는 영광’ 이라며 부등켜 안고,아주 오랫동안 서로의 등을 토닥여 준다.
1950년 전북 순창 출신의 박종월 씨는 일찍 부모를 여의고 기댈 곳 하나 없는 세상에서 모진 일,험한 일로 하루를 버티며 살았다. 꿈도 희망도 없던 시절,박종월 씨는 달동네 양장점 보조원이던 안효숙 씨를 만나면서 새로운 인생을 살게 된다. 가난하고 배우지 못했지만 알뜰하고 똑부러진 아내의 내조로 조금씩 안정을 찾아간 것이다.
“직업도 없는 나한테 아내가 와줬으니 그때는 돈되는 일이면 뭐든 했죠. 과일 장사, 신문팔이, 중동 노무자,택시기사… 안해본 일이 없어요. 희망이 있어서 그런지 고생인줄도 모르겠더라구요. 그저 하루하루 통장에 돈 쌓여가는 재미, 자식 키우는 재미로 신명났던 시절이었습니다.”
그렇게 20년을 착실히 불려간 통장은 생애 처음으로 ‘안경점’ 이라는 내 가게를 얻게 되는 행운으로 돌아온다. 안정적인 수입이 생기면서 봉사에 대한 결심도 섰지만,공부 욕심이 많았던 아내는 검정고시를 간절히 원했고 박종월 씨도 함께 하기로 결심했다.
그때 그들의 나이 50세! 지천명의 나이에 검정고시와 수능이라는 고개를 넘어 함께 안경광학과 2000학번을 달았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평소 늘 다짐하고 공부의 이유가 되었던 봉사활동에 뛰어 들었다. ‘안경사 자격증’ 을 딴 2002년부터 25인승 버스를 개조해 만든 ‘달리는 안경원’ 을 운영하게 된 것이다.
달리는 안경원은 웬만한 시력검사기와 안경 제작 시스템을 다 갖춘 미니 종합 안경원이다. 박종월, 안효숙 부부는 이 버스로 고아원,양로원, 교도소,섬, 오지 마을 등 안가는 곳이 없다. 아담하지만 없는 것이 없는 이 안경원에는 빛을 찾은 어려운 이들의 기쁨과 눈물이 묻어난다. 희미한 불빛만 보다 그토록 보고 싶던 드라마와 아들 얼굴을 보게 된 86세의 할머니, 시아버지가 쓰고 다닌 부러진 안경테를 실로 칭칭 감아 쓰다 멋진 돋보기를 선물받은 할머니 , 시력 이 나쁜지도 모르고 늘 눈을 찡그리고 다니다 안경을 쓰고 교실을 팔딱팔딱 뛰어다녔다는 초등학생…
우리 사회에는 아직도 안경 하나 살 돈이 없어 암흑천지를 살아가는 어려운 사람들이 그리도 많았던 것이다. 눈이 잘 보이자 두 부부가 마치 ‘천사’ 처럼 보인다며 땅에 넙죽 엎드려 절하는 어르신들을 보며 안경 봉사에 대한 부부의 사명감은 날로 깊어간다.
“제 기술이 이거니, 이걸 안하면 죄 짓는 것 같아요. 기다리는 분들을 생각하면 하루가 바쁩니다. 요즘은 특히 애들한테 관심이 많이 가요. 아동기에 시력을 잘 잡아주면 평생 눈이 좋은데 이런 혜택을 못 받고 있어 안타깝거든요.”
한 달에 4~5번, 일 년에 40~50회 안경 봉사를가면서 지금까지 해준 안경이 2만 개. 2만 명의 빛과 희망이 되었지만 아직도 갈 곳이 많다는 부부는 이제 또 다른 꿈과 계획으로 부풀어 있다. 어느 덧 10년이 지난 미니버스를 교체하고 싶고 휠체어를 타고 오는 분들을 위해 버스에 리프팅 장치도 달고 싶다. 부지런히 벌어 하나하나 모두 다 이뤄낼 생각이다.
“안경은 시력을 좋아지게도 하지만 눈이 좋아지면 영혼까지 개안되는 효과가 있어요. 안경을 맞추고서는 세상 살맛이 난다며 즐거워하시는 걸 보면,정말 이 안경 하나가 인생을 바꾼다 싶어 허투루 할 수가 없지요.”
지금도 누군가를 위해 찬 새벽공기를 마다 않고 미니버스에 몸을 싣는 박종월,안효숙 부부…. 그들이 만들어내는 사랑과 실천의 봉사정신은 ‘달리는 안경원’ 을 타고 전국에 빛과 희망이 되어 달려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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