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이옥선

“좋은 일 하고가면 다음 생에선 행복할 수 있겠지”

이옥선

“힘들었어, 힘들어… 말도 못하게 고생했어… 내가 전생에 무슨 죄를 지어서 그러고 고생하고 살았나 몰라.”
지금도 치가 떨리고 몸서리가 쳐져 잠이 오지 않는다고 하소연하는 이옥선 할머니. 그녀는 세상 누구보다 모진 경험을 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다.
가난한 집 맏이로 태어나 학교도 다니지 못한 옥선은 학교에 보내주겠다는 말에 식당에 양딸로 들어갔다. 하지만 그녀를 양딸로 삼은 이들은 옥선을 식모처럼 부려먹기만 했다. 배를 곯는 설움 보다  더 서러웠던 계부, 계모의 구박. 하지만 그녀의 고난은 그게 시작일 뿐이었다. 집으로 다시 돌아간 옥선은 16세 되던 해,마을 대부분의 처녀들과 함께 일본군 위안부라는 시대가 낳은 운명의 소용돌이에 휩쓸리게 된다.
내 삶을 내가 선택할 수 없는 현실. 흑독한 일본군 위안부 생활로 수차례 죽을 고비를 넘긴 기 막힌 인생. 종전이 되면서 겨우 지옥 같은 생활에서 벗어날 수 있었지만 차마 고향에 돌아갈 순 없었다.
속리산 법주사에서 봉사활동을 하면서 허드렛일과 사람들의 심부름을 해주며 힘들게 살았다. 모진 고통의 세월 속에서도 할머니는 나라를 원망하지 않았고,오히려 우리나라의 부국강병을 기원하며 아침마다 태극기를 게양했다. 또 동네 노인들에게 음식을 베풀며 따뜻한 정을 나누었다.
2009년,할머니는 누구도 생각할 수 없었던 큰 결심을 하게 된다.  20년간 생활비와 약값을 아껴 모은 돈 2천만 원을 ‘보은군민장학회’ 에 기부하기로 한 것이다. 평생을 시련을 안고 살아온 할머니 에게는 전 재산 같은 거금이었다.
‘내가 못나고, 내가 가난하고,내가 글을 모르고,내가 전생에 죄가 많아 이렇게도 고생하고 산것 같아. 좋은 일 하나라도 하고 가면 아마 다음 생에는 좋은 데서 태어날 수 있지 않을까?’
자신이 가난하고 못 배워 불행하게 살았다 생각하는 그녀는 자신의 인생이 고스란히 담긴 돈 2천만 원으로 가난 때문에 학업을 이어가기 어려운 학생들이 좀 더 배울 수 있도록 돕고 싶었던 것이다.
여든의 나이를 넘긴 이옥선 할머니…. 가시덤불 같은 혹독한 인생을 걸어왔지만, 그녀는 모든 것을 용서하고 모든 것을 품에 안을 줄 아는 넉넉한 우리네 어머니요,할머니다. 나라의 아픔과 설움을 온몸으로 이겨내고 원망 대신 더 큰 사랑으로 세상을 품어 안으며 한평생을 착하게 그리고 열심히 살아낸 이옥선 할머니.
국민추천포상은 그런 할머니의 삶에 이웃들이 뜻을 모아 바치는 존경과 감사의 훈장과도 같은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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