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훈장 목련장김용철

“세상 구석 구석 빛과 희망이 되고 싶어요”

김용철

“인생은 유한하지만 국가는 무한하다.”
평생 고생해서 아껴 모은 전 재산 85억. 이 돈을 국방부에 기부한 김용철 씨의 좌우명이다. 그는 10년 전 아내와 사별한 뒤, 자식들에게 짐이 되고 싶지 않아,현재 용인의 한 실버타운에서 여생을 보내고 있다.
김용철씨는 청년기에 일본으로 건너가 신문팔이와 남의 집 심부름을 하며 고학으로 학교를 마쳤다. 이 경험이 세상에 열심히 해서 안되는 일이 없다는 삶에 대한 긍정과 불굴의 투지를 가르쳐 주었다고 회고한다. 약 30년을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안정된 생활을 해왔던 그는 50세가 되던 해 뜻하지 않은 일로 직장을 그만두고 사업가로서의 삶을 시작했다.
평생을 공무원으로 살다 시작한 사업이었지만 다행히 섬유공장, 봉제 공장,스티로폼 공장 등이 나름의 성과를 거두면서 고비 없이 인생을 헤쳐 나갈 수 있었고,만년에는 큰돈을 모을 수 있었다. 그렇게 굴곡 없이 일생을 살아왔던 90세의 노인이 왜 갑자기 전 재산을 나라에 쾌척했을까?
자식이 세 명이나 있었지만 그는 고심 끝에 상속이 아닌 기부를 선택했다. 그것도 민간 최초로 국방 과학 분야에 전액을 기부했다. 그에게 왜 다른 곳이 아닌 국방 분야에 기부를 하게 되었는지를 물었다.
“내가 군대 갈 때는 우리나라가 없었어. 당시 일본이 태평양전쟁을 일으켜 강제 징용당하는 청년들을 보면 분개할 수밖에 없었지.”
전쟁이 확전되면서 쌀과 그릇,심지어 처녀들까지 빼앗아가는 일본의 만행을 본 그는 나라 없는 국민이 얼마나 서럽고 굴욕스러운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고 했다. 이 때 겪었던 나라 잃은 설움은 ‘나라가 없으면 개인도 없다’ 는굳은 신념의 단초가 되었다.
평소부터 옷 한 벌 제대로 사입지 않는 검소한 생활로 소문이 난 김용철 씨! 하지만 그는 가슴에 늘 국가 안보에 대한 걱정과 강군을 위해 자신이 무언가 한몫을 담당해야 한다는 비범함을 품고 살았다. 남들은 크게 생각하지 않는 국내외 안보 위협에도 늘상 대비해야한다는 조바심이 그를 마침내 국방 분야의 첫 번째 기부자로 만든 것이다.
“ 북한, 중국, 일본, 러시아 등 군사 강국으로 둘러싸인 우리나라는 언제나 전쟁 위험에 처해 있는 나라야.  그러니 언제든지 대비를 해야지. 평소 국가 안보 쪽으로 생각을 많이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그리된 거야.”
김용철씨의 일생을 담은 85억 원의 돈은 그의 바람대로 국가안보를 위해 새롭게 태어났다. ‘국방신기술센터’ 가 바로 그것이다. 김옹의 호인 ‘의범’ 을 따 ‘의범관’ 이라고도 불리는 이 연구센터는 지하 1층, 지상 3층의 규모로 만들어졌다. 이곳에서는 친환경 신물질 원천기술의 확보와 첨단 신무기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너무 역사의식이 뚜렷한 것도 병’ 이라는 김용철 씨. ‘나라가 있어야 국민이 있다’ 는 그의 국가관은 오랜 시간 나라 없는 설움을 겪은 이들만이 알 수 있는 세상의 철칙 인지도 모른다. 국민이 국가를 위해 할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은 다해야 한다는 그의 생각은 이러한 국가관을 반영한다.
자신이 가진 것을 다 내놓고,실버타운에서 젊은 날을 회상하며 여생을 보내고 있는 김용철 씨. 그의 투철한 애국정신은 그가 남긴 연구센터의 곳곳에서 자라나 강한 군대,강한 대한민국의 든든한 초석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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