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훈장 목련장길분예

“없는집서 태어나 공부도 맘놓고 못하니 얼마나 안됐어”

길분예

“아유, 말도 말아요. 그런 억척이 할머니가 또 어디 있겠어요. 수도세 천원 때문에 그렇게 저희 와 담판을 지을 줄은 정말 몰랐어요. 푼돈에 벌벌 떠는 모습을 보면 할머니가 재산이 10억이 넘는 자산가라는 것을 믿을 수가 없어요.”
할머니 상가에 세들어 사는 이들의 공통된 원성이다. 길분예 할머니가 한평생을 얼마나 구두쇠 로 살아왔는지 짐작하게 되는 대목이다.
전 재산 15억 원을 한밭대에 사후 기중하기로 약속한 길분예 할머니가 사는 곳은 대전시 정림 동 상가주택 2층의 원룸. 13평짜리 이곳은 방 하나, 거실 하나, 화장실 하나의 좁디좁은 공간이다. 웬만큼 추운 겨울날에도 할머니는 보일러 한번을 안 땐다. 따뜻한 물에 세수하는 것도 잊은 지 오래다. 사람이 유난스러운 데가 있으면 반드시 그 이유 또한 있을 터. 억척 할머니의 짠순이 기질은 어디서 온 것일까?
궁핍한 시골 농부의 딸로 태어난 길분예 할머니는 7살에 집안 모든 살림을 떠맡았다. 나물을 뜯어 팔며 돈까지 벌어 와야 했다. 7살 고사리 손으로 살림을 꾸려가야 했던 길분예 할머니에게 세상은 하루하루가 고생스럽고 힘든 고갯길이었다. 결혼을 하면 좀 나아질까 했지만,할머니의 삶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다. 그녀의 남편이 하필 노름꾼이었던 것이다.
친정살이보다 훨씬 고되고 팍팍했던 시집살이.  100일 된 아들을 업고 집을 나왔지만 피붙이와 정을 나눈 세월도 잠시,한창 예쁜 7살 아들을 시댁에서 데려가 버렸다. 그때부터 할머니는 기구하고도 긴 인생을 홀로 외롭게 버텨낼 수밖에 없었다.
자신외에는 의지할 곳이 없는 인생을 아무것도 가지지 않은 채 살아내기 위해 할머니는 말 그 대로 악착을 떨어야 했다. 새벽이면 홀로 일어나 동네 폐지를 줍고,낮이면 나물을 뜯어 시장에 내다 팔았다. 이렇게 해서 어렵게 주머니에 들어온 돈은 한푼도 허투루 쓰지 않았다. 근검 절약과 성실 덕분에 할머니의 재산은 조금씩 불어났고 형편도 풀렸다. 제법 불어난 재산으로 안락하게 살아 갈 수도 있으련만, 할머니는 90살이 넘은 나이에도 생활비를 아끼며 좁은 원룸에서 살아가고 있다.
“내가 평생 혼자 살며 악착같이 모은 돈, 그냥 이대로 죽으면 아무 의미가 없잖아. 그래서 어떻게 할까 했는데 내 뜻을 평소 알아주던 한밭대에서 좋은 데 쓸수 있도록 해줬어…. 나처럼 없는 집에 태어나 공부도 맘놓고 못하는 학생들을 보면 정말 안타까워.”
한 많고 외로운 인생. 세상에 태어나 좋은 일 하나쯤은 해놓고 죽어야 눈을 감을 수 있을 것 같은 심정. 평생 자식과 같이 살아보지도 못하고 살뜰하게 정을 나눌 대상도 찾지 못한 할머니. 하지만 그녀가 악착스럽게 번 돈은 손주 같은 학생들이 가난 속에서도 공부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줄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도움으로 공부한 학생들은 길분예라는 이름을,각박한 삶의 끝에 모은 모든 걸 어려운 학생들에게 베풀었던 할머니의 삶을 한 번 더 돌아보게 될 것이다.
대전 정림동의 한 좁디좁은 원룸에는 오늘도 누군가가 그리워 잠 못 드는 노환의 길분예 할머니가 살고 있다. 한 평생 억척이로 고생만 한 그녀. 국민추천포상은 쓸쓸하고 힘겨웠던 할머니의 인생이 결코 헛되지 않았다며 그녀를 다독여주는 이웃들의 따뜻한 선물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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