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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무총리표창황점순

2만원의 일당을 모아 기부한 ‘꽃보다 아름다운 할머니’

황점순

그 마을에는 꽃보다 고운 할머니가 살고 있다고 했다. 그 할머니는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도 어려운 학생들에게 꼬깃꼬깃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선뜻 내어놓고, 틈만 나면 홀로 사는 어려운 이웃의 독거노인들을 찾아 도움의 손길을 건넸다고 했다. 그녀는 77세의 고령에도 희생과 헌신으로 이웃사랑을 나누는 황점순 할머니이다.

햇살 드는 산마을에 꽃보다 고운 할머니

전북 임실군 선원마을. 시골마을의 한적한 풍경에 비껴 내리는 햇살이 따스하고 포근하다. 이 마을에 꽃보다 어여쁜 할머니가 살고 있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자 아담한 시골집의 모습이 마치 고향집을 찾아온 듯 무척 눈에 익다. 꽃무늬 셔츠를 예쁘게 차려입은 황점순 할머니가 환하게 미소를 지으며 인사를 한다. 얼마 전부터 몸이 조금 불편해져 집에서 쉬고 있다는 할머니의 인상은 우리네 어머니들처럼 편안하고 넉넉하다.
“요기서 멀지 않은 데에 화훼농장이 있어요. 장미꽃을 다듬고 포장하고 하는 일을 했지라. 거기서 일을 많이 했제. 지금도 언제쯤 나오실 수 있냐고 하는디, 인자 갈 수 있을랑가 몰르것네요.”
인근 장수군이 고향인 황 할머니는 스무 살 나이에 순흥 안씨 종갓집의 종부로 시집을 왔다. 할아버지는 10대 종손의 귀한 자손이었지만, 살림살이는 궁핍하기만 했다. 벼농사를 짓고 살았지만 매번 식구들 끼니를 걱정할 만큼 사는 게 녹록치 않았다. 부부는 슬하에 7남매를 두었다. 딸이 다섯에 아들이 둘, 시부모님까지 합쳐 모두 11명의 대식구였다.
“그때는 정말 아그들 밥 챙겨 먹고 사는 것 만해도 큰 일이었어라. 식구가 모두 열 하나니 죽어라 농사짓고, 일해도 살기가 힘들었제.”
황 씨 할머니는 그렇게 종부집 맏며느리로, 또 7남매의 자식들을 둔 어미로 마을에서 똑 소리 나게 살림 잘하는 일꾼으로 평생을 살아왔다.

우리 자식들한테 못한 거 갚는 셈이어라

마을에서는 황 할머니가 ‘자식농사 한번 참 잘 지었다.’며 칭찬이 자자하다. 장성해서 출가한 자식들이 모두 효자효녀들이다. 별 탈 없이 부모 속 썩이지 않고 자란 자식들은 이제 모두 결혼해 서울, 광주, 전주 등 대처에 나가 살고 있다. 이제 노부부만이 오래도록 살아온 고향마을을 지키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평생 농사를 짓던 할머니는 자식들이 다 큰 뒤에도 일손을 놓지 않았다. 노점에서 장사를 하기도 하고, 어디든 품앗이가 있으면 달려가곤 했다. 마을 인근에 화훼단지가 들어서고부터는 구부정한 허리를 일으켜 또 품을 팔았다. “평생 일만 하다가 살다보니 일을 안 하면 온몸이 아픈 것 같지라. 그리고 내가 참말로 꽃을 좋아혀요. 꽃도 보고 일도 하니 일석이조 아녀라? 하루 나가면 2, 3만 원 일당도 받으니 늙은이 일로 힘들지가 않어요. 조금씩 일을 해서 손주들 용돈도 좀 주고, 나머지는 모아서 좋은 일에 써야겠다는 생각을 했지라.”

어려운 학생들을 돕고 싶은 작은 꿈

자식들이 출가한 뒤로도 일손을 놓지 않고 일하다 보니 조금씩 돈이 모이기 시작했다.
“두 늙은이 사는 데에는 큰돈이 안 들어요. 그래서 인제는 좀 베풀면서 살아야겠다고 생각을 했지요.” 황 씨 할머니는 지난 2003년 어느 날 할아버지가 외출하시는 길에 두툼한 봉투를 챙겨서 주머니에 넣어주었다. 할아버지는 면사무소로 찾아가 할머니가 모아둔 꼬깃꼬깃한 돈 100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그동안 화훼단지에서 받은 품삯과 장날 노점을 하며 푼푼이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내놓은 것이다.
“지금도 책가방을 들고 가는 학생들만 보면 내 자식 같고, 내 손자 같은 마음이 들어 그냥 지나칠 수 없지라. 비록 몇 푼 안 되는 작은 돈이지만 조금씩 모아서 도운 것뿐이어라. 나보다 더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쓸모 있게 쓸 것잉게. 기분이 참말로 좋제. 학생들이 공부 열심히 혀서 큰 일꾼이 된 다면 더 좋겠제.”
이후에도 할머니는 2007년부터 지난 2011년까지 다섯 차례에 걸쳐 총 500만 원을 장학금으로 기탁했다.
“학생들뿐만 아니라 아직도 잘 살펴보면 어려운 이웃들도 많아요.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것이지라. 눈에 자꾸 밟히니께요.”
이 때문에 할머니는 틈만 나면 이웃들을 챙긴다. 황 씨 할머니는 오래전부터 마을에서 혼자 살고 있는 노인들을 돌보고 있다. 할머니가 사는 선원마을은 총 15가구의 작은 마을로 독거노인 세대가 많고 나이도 70세 이상의 고령자들이 대부분이다. “청소해주고, 빨래 좀 거들고 하는 것이제. 혼자 계셔서 잘 못 챙겨드시니 밑반찬 좀 있으면 챙겨다 드리고 그러제. 옛날 우리 살 때는 다들 그렸어. 별 거 아니랑께.”
할머니는 손사래를 치며 부끄럽게 웃는다. 어려웠던 시절 자신이 받은 고마움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는 황 씨 할머니. 햇살이 비치는 마당 한 켠에 할아버지와 나란히 앉아 활짝 웃는 두 노부부의 얼굴이 참으로 꽃보다 아름답게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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