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무총리표창신정옥

갓 지은 따뜻한 밥에 보약보다 좋은 사랑을 담아 드립니다

신정옥

안산시 본오동에 사는 주부 신정옥 씨는 오늘도 100명이라는 대식구의 식사를 준비한다.그녀가 남편과 함께 운영하는 ‘행복 나눔 무료급식소’에서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독거노인과 불우한 이웃들에게 따뜻한 식사를 대접하고 있는 것이다. 현재의 본오1동 무료급식소에 오기까지 경제적인 이유로 4번이나 급식 장소를 옮겨야 했지만, 이웃에 대한 신정옥씨의 나눔은 멈추지 않았다.

행복 나눔 무료급식소에서는 식사도 무료, 사랑도 무료

아침 6시, 안산시 본오 1동의 ‘행복 나눔 무료급식소’. 신정옥씨는 동 트기 전부터 식사준비에 여념이 없다. 남편 이석권 씨가 새벽시장에 들러 사온 신선한 재료로 매주 메뉴를 정해 상을 차리는데, 오늘의 메뉴는 어르신들의 원기 회복을 위해 특별히 준비한 삼계죽이다. 헛개·오가피·산뽕잎 등 각종 약초를 넣은 육수에 삶은 닭을 건져 내어 신 씨 부부가 일일이 뼈를 발라내고는 한 입에 먹기 좋은 크기로 자른다. 찹쌀을 넣고 육수
가 끓어오를 때까지 쉬지 않고 준 뒤, 잘라놓은 닭고기를 넣으면 영양만점 삼계죽 완성. 배식시간은 오전10시부터 지만 어르신들은 일찌감치 찾아와 식사를 기다리고 있다.

신정옥 씨는 늘 어르신들을 반갑게 맞이해 우선 따뜻한 차부터 한 잔 타드린다. 맞장구를 치면서 어르신들과 이야기를 나누고, 건강에 관한 여러 가지 정보도 전해드리고, 때론 몸에 좋은 약초를 챙겨 드리기도 한다. 말이 무료급식소이지 어르신들의 사랑방이나 다름없다.
“하느님이 보내준 사람이야. 천사 같어!” 오랫동안 신정옥 씨를 봐 온 할머니 한 분이 이렇게 말하자 그 옆에 같이 있던 다른 어르신들도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거드신다. “그럼 그럼.”
“처음에 지팡이를 짚고 오셔서 식사를 하시던 노인이 한 분 계셨어요. 그런데 보름쯤 지나자 그 분이 지팡이 없이 걸어오시는 거예요. 그동안 제대로 못 드셔서 기운이 없어 잘 걷지 못하셨던 거더군요.” 그런 어르신들을 보면 신정옥 씨는 뭐 하나라도 더 챙겨드리고 싶다. 신경통에 좋다는 쇠비름효소도 만들어 드리고, 천연염색약으로 염색도 해드린다. 명절이면 선물용 생활용품과 떡을 나눠드리며 신 씨는 여느 집안 딸이나 며느리보다 더 살갑게 어르신들을 섬기는 신정옥씨.
“평소에 아들 자랑을 입버릇처럼 하던 분이 계셨어요. 그런데 얼마 후 그 분이 새벽에 일찍 오셔서 넋두리를 하시는데, 그동안 자식에게 서운했던 얘기를 다 털어놓으시더라고요.” 어르신들과 매일같이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자연히 그 분들의 어렵고 힘든 처지와 가정사에 대해서도 알게 된다. 그러면 신 씨는 주민센터나 구청, 시청 등을 쫓아다니며 도와드릴 방법을 찾는다. 사실상 신정옥 씨가 어르신들의 만능해결사인 것이다.

나눌수록 커지는 봉사의 법칙

“20년 전, 의정부에서 유리공장을 운영하다가 부도가 나는 바람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어머님 임종조차 지키지 못했어요. 그리고 3년 뒤에는 아버님마저 돌아가셨고요. 부모님께 불효를 끼쳐 늘 죄송한 마음이 있었는데 남편이 먼저 사회봉사를 하자는 말을 꺼내더라고요. 어쩔 수 있나요? 남편이 하자면 해야지. 하기 싫으면 신랑을 바꿔야죠. 호호호.”
신 씨 부부의 이웃사랑은 2004년에 김장 나눔으로 시작되었다. 트럭 한 대 분량의 배추를 사서 김장을 담가 어르신들에게 김치 한 통씩을 나눠드리고, 돼지고기를 삶아 함께 먹었다. 그러다가 동네 공터에 천막을 치고 본격적으로 생활이 곤란한 어르신들에게 식사 대접을 하기에 이르렀다. “어르신들이 점점 많이 오시니 덜컥 겁이 나기도 했어요. 게다가 땅 주인도 찾아와 공터를 비우고 나가달라는 거예요.” 그 때 ‘차라리 이 참에 그만 두자’는 마음도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식사를 거르는 어르신들을 어찌할 수 없었다. 식사를 할 곳이 없어진 노인들을 우선 신 씨 부부의 집에서 모셨으나, 대안을 찾아야 했다. 새로이 찾은 대안은 적십자봉사회에 가입해 어르신들께 도시락 배달을 하는 것.
“그런데 그것만으로는 부족한 것이 있더라고요. 그 분들에게 도시락 배달을 다 해드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무료급식을 다시 하자고 마음먹었죠.” 부부는 조그만 건물을 빌려 무료급식을 다시 시작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으로 월세를 감당하기에 벅차 4번이나 자리를 옮겨야 했다. 그래도 매사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신정옥 씨는 포기하지 않았고, 2010년 에는 ‘행복나눔무료급식소’를 경기도 비영리 민간단체로 등록해 좀 더 체계적으로 봉사를 이어갔다. 그렇게 되자 차츰 후원해주는 단체나 기관들과 급식을 돕는 자원봉사자들도 늘어났다.
매주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의 오전 식사 준비 비용은 한 달에 350만 원. 이 중 100만 원은 시집간 딸이 매달 부담한다. 신씨의 딸은 이러한 경제적 지원 뿐 아니라, 저소득층 아이들 6명에게 온라인 영어수업 또한 무료로 해주고 있다. 봉사도 대물림이 되나보다.
“가끔 내가 이 일을 안 했으면 어떤 보람으로 살았을까 싶어 웃음이 날 때도 있어요. 살아온 날보다 앞으로 살아갈 날이 더 적은데 그 남은 날에 무엇인가를 꼭 남기고 싶어요.”
갓 지어 모락모락 김이 나는 식사 한 끼를 정성스럽게 대접하다보면 어느 새 마음이 행복감으로 꽉 차오른다는 신정옥 씨. 오늘도 그녀는 힘닿는 데까지 어르신들을 부모처럼 섬기는 게 자신의 가장 큰 행복이라며 해맑게 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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