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무총리표창故박성배

점심은 도시락, 5천원의 온정을 베푸는 ‘구둣방 아저씨’

故박성배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 모인 24명의 수상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던 고 박성배 씨의 얼굴이 떠오릅니다. 고 박성배 씨는 거리 모퉁이 한곳에 늘 자리를 지키면서 이웃들에게 행복한 웃음을 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그의 체취가 배어있던 그 자리는 지금 비어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고 박성배 씨가 몇 달 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나셨기 때문입니다. 그를 기억하는 이웃들은 그가 자리를 지키던 구둣방 앞을 지날 때마다 그를 위한 기도를 올립니다. 기부 천사 故박성배 씨의 명복을 빕니다.

배추 500 포기 협찬한 구둣방 아저씨

군산시 소룡동 동아아파트 앞 길가 한 귀퉁이에서 구두수선 가게를 운영하던 박성배씨(55세)는 몇 달 전 심장병으로 세상을 떠났다.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 모인 24명의 수상자들 중에서 누구보다도 행복하게 웃던 그의 자리는 이제 비어 있다. 그를 기억하는 사람들은 한 결 같이 그를 ‘좋은 일 많이 하던 착한 사람’으로 기억한다.
“처음 박성배 씨를 알게 된 것은 전화 한통을 받으면서부터입니다.” 얼마 전까지 군산시 소룡동 주민센터에서 사회복지 업무를 맡았던 담당 공무원은 박 씨에 대한 기억을 떠올리며, 그가 참 특별하고 재미있는 사람이었다고 말한다. 어느 날 불현 듯 박씨가 전화를 걸어 자신이 배추를 500 포기를 샀는데, 김장을 해서 불우한 이웃들에게 나눠주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본래 동네에서도 칭찬이 자자하던 박 씨였기에 담당 공무원은 그의 말을 듣고는 바로 그의 구둣방으로 찾아갔다.
“말이 500 포기이지, 배추를 구둣방 앞에 산더미처럼 쌓아두었더라고요. 자신이 직접 김장김치를 담아서 이웃들에게 나누어주고 싶었는데, 막상 500 포기나 되는 배추를 보니 엄두가 안 난다며 도와달라는 것이었죠. 그때가 2010년이었는데, 그해 겨울에는 배추 값이 금값이었어요.” 당시 소룡동 주민센터에서는 해마다 김장철에 배추 1,000 포기를 담아 어려운 이웃에 나눠주는 김장김치 나누기 행사를 하고 있었다. 사실 그때 담당 공무원은 배추 값이 워낙 비싸서 배추 1,000 포기를 어떻게 마련하나, 걱정하고 있던 터였다. 그래서 그는 박 씨가 내어놓은 배추에 주민센터의 예산을 보태 1,000 포기의 김장을 담갔다. 그렇게 담근 김장은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살림이 어려운 150여 명의 주민들에게 5㎏씩 돌아갔다.

옛 피난촌 마을에 꽃피운 훈훈한 사랑

전남 진도가 고향인 고 박성배 씨는 14년 전인 1998년 이곳에 자리 잡고 구두 수선방을 열었다. 그러면서 집안 형편이 어려운 아이들을 보면 자신이 가진 돈을 나눠주며 도와주기 시작했다.
‘김장배추 일’ 이후에도 그는 수시로 주민센터에 전화를 걸어 왔다. 유난히 추위가 극심했던 어느 해 겨울, 그는 “연탄 1,000장을 기부하고 싶은데, 배달을 좀 해주셨으면 합니다.” 라며 공무원들에게 요청했다. “그해에는 박 씨가 연탄을 사서 불우이웃들을 돕고 싶은데, 배달비가 만만치 않다며 차라리 그 돈으로 연탄을 더 살 테니, 주민센터에서 연탄을 나를 자원봉사자를 좀 찾아달라는 것이었어요. 연탄을 한 장이라도 더 사면 어르신들이 추운 겨울에 하루라도 더 따스하게 보내지 않겠느냐면서요.” 박 씨의 엉뚱한 요구에는 추운 겨울을 나야 할 이웃들에 대한 따뜻한 배려가 담겨있었다.
박 씨는 하지 지체장애 3급을 지닌 장애인이었다. 그가 불편한 몸으로 구두를 닦거나 수선해 버는 돈은 하루 7만~8만 원 정도. 병원에 검진을 받으러 가는 날이나 비오는 날에는 아예 수입이 없었다. 그렇게 박 씨가 한 달에 20일 정도를 일해 벌어들인 돈이 대략 150만 원쯤. 그가 하루에 먹어야 하는 약만 해도 20여 알이 넘어 한 달 약값으로만 30~40만 원이 들어갔다.
넉넉하지 않은 수입으로 생활하던 박 씨가 본격적으로 선행을 베풀기 시작한 것은 2007년 밥도 못 먹을 정도로 어렵게 살고 있는 어느 할머니의 안타까운 사연을 듣게 되면서부터이다. 박 씨는 그날 구두를 닦아 번 돈을 전부 그 할머니에게 드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박 씨는 한 두 명씩 어렵게 생활하는 이웃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그러던 박 씨는 이왕 도와줄 것이라면 목돈을 마련해 좀 더 많은 사람들에게 도움을 주자는 마음을 먹게 됐다. 그래서 그는 자신의 점심값을 절약했다. 점심을 식당에서 사먹지 않고 집에서 도시락을 싸와 매일 5천 원씩 저축을 했다. 그렇게 모은 돈이 한 달에 15만원, 1년이면 약 100만 원의 목돈이 되었다. “그의 도시락에는 늘 반찬이 두 가지뿐이었어요. 맨밥을 먹는 것처럼 팍팍했을 텐데, 박 씨는 그래도 무척 즐거워했습니다.”

더불어 사는 세상을 꿈꾸던 천사가 떠나다

그를 기억하는 소룡동의 새마을금고 직원은 이렇게 말한다. “아침에 문을 열면 제일 먼저 5천 원을 저금하러 오셨어요. 월요일에는 토요일 것까지 합쳐 1만 원을 저금하셨습니다. 저희 직원들은 박 씨 아저씨를 1등 고객이라 말하고, 그가 매일 돈을 넣는 통장을 ‘사랑의 통장’이라고 불렀습니다.”
나눔에 대한 고 박성배 씨의 철학은 한결 같았다. “가난도 장애도 나눔과 봉사를 가로막는 벽이 될 수 없습니다. 마음만 있다면 누구나 다른 사람을 도와줄 수 있습니다. 하고 싶은 만큼, 할 수 있는 만큼이면 충분합니다. 무엇보다 지금 당장 실천하는 것이 중요하지요.”
매일 점심값 5천 원을 아껴 소년소녀가장과 독거노인 등 어려운 이웃을 도우며 이웃사랑을 실천해왔던 고 박성배 씨. 고인은 지금 이 세상에 없지만 그가 보여주고 실천한 사랑의 온기는 아직도 이웃들의 마음속에 따뜻하게 남아 있다.

국민추천포상의 영예를 뒤로 한 채 작고하신 故 박성배 님의 명복을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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