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무총리표창김무근

“365일 역 앞에서 밥 퍼주며 이웃과 사랑을 나눕니다”

김무근

대구 칠성동 토박이로 60 평생을 살아온 김무근 씨는 동네에서 30년 넘게 작은 슈퍼마켓을 운영하는 칠성동의 큰 일꾼이다. 그의 하루는 봉사로 시작해 봉사로 끝난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매일 같이 봉사를 하는 탓에 그는 가족과 휴가 한 번 제대로 가본 적이 없다. 지역사회에서 꾸준히 봉사를 해오던 그는 1998년부터는 노숙인들을 위한 무료급식도 해오고 있다. 그동안 해온 봉사시간만 15,000시간이 넘는 김무근 씨에게는 하루해는 짧기만 하다.

대구 칠성동에서 제일 부지런한 평생일꾼

칠성동은 대구역 바로 앞에 있는 동네이다. 대구역 건물이 현대식으로 바뀌고, 그 주변을 고층빌딩이 둘러싸고 있지만 김 씨가 수십 년 째 살고 있는 칠성2동은 예전 풍경이 여전히 남아 있다. 키 작은 집들이 자리 잡은 낡고 오래된 담장들 사이로 김 씨의 아내가 지키고 있는 슈퍼가 보인다. 슈퍼 앞 평상에는 김 씨 부부의 이웃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있다. 한 동네에서 수 십 년째 정을 나누며 같이 살아온 이들은 김 씨 부부에게는 한 가족이나 진배없다.
“우리 동네는 아직도 이웃 사이에 인정이 남아있어요. 이게 다 동네 살림꾼인 김 통장 덕분이지요. 한 서른 살 쯤부터 통장을 맡아왔으니까, 그 사람은 이제 동네 구석구석, 집집마다의 살림살이를 훤하게 꿰뚫고 있습니다.” 이런 한 주민의 말처럼 김무근 씨는 29세 때인 1979년 통장을 맡아 지난 2010년까지 이 동네를 위해 일해 왔다.
이렇게 마을을 위해 봉사를 하던 김씨는 1998년 외환위기 사태가 터진 직후부터는 길 건너 대구지하철역 역사 옆에 ‘대구지하철 무료급식봉사센터’를 마련해 노숙인들을 위한 저녁식사를 제공하고 있다. 올해로 14년째를 맞은 이 급식소에는 매일 약 200여명의 노숙인들이 찾아와 끼니를 해결하고 있다. “역 주변으로 노숙인들이 하나 둘 모여들면서 탈도 많고, 사고도 많아졌어요. 그러던 어느 날 교회에서 무료로 주는 라면을 서로 먼저 먹으려고 싸우는 노숙인들을 보고는 처참하고 안타까운 생각이 들었습니다. 날이 꽤나 추웠는데, 따뜻한 국물 한 모금을 먼저 차지하려고 서로 싸운 것이지요. 그때 그들에게 제일 필요한 게 따뜻한 밥 한 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무료급식을 시작했습니다.” 이웃을 위해 평생을 봉사해온 그에게 그것은 그다지 어려운 결정도 아니었다.

일등요리사가 따로 있나요?

매일 오후 3시가 되면 김무근 씨의 걸음이 빨라지기 시작한다. 그가 서둘러 가는 곳은 대구 지하철역 옆에 있는 작은 공터이다. 이곳에서 그는 무료급식을 위한 식사준비를 한다. 오늘 저녁 메뉴는 콩나물국에 돼지족발 조림, 마늘장아찌이다. 자원봉사자와 함께 재료를 준비하는 그의 손길이 바쁘게 움직인다. 40인분용 큰솥 4개에 밥을 안치고, 반찬을 준비하는 김 씨의 이마에 어느새 땀방울이 송긍송글 맺힌다. 돼지족발을 손질해 양념을 하는 그의 얼굴에 흐뭇한 미소가 흐른다. 하지만 매일같이 200인분의 식사를 준비하는 일은 결코 쉽지 않은 일이다. 몇 해 전부터는 몇몇 봉사단체들이 그를 도와 정해진 일정에 따라 함께 식사준비를 한다. 재료를 손질하고 쌀을 씻는 봉사자들의 손이 분주하다. 하지만 밥을 안치고, 반찬에 맛을 내는 일은 모두 김 씨가 한다. “군대에 있을 때 잠깐 취사병 노릇을 한 적이 있습니다. 눈짐작으로 대충 하는 것 같지만 내 나름대로 요령이 있습니다. 하하.”
식사를 준비하는 사이 어느덧 해가 넘어가고, 어둑어둑 해진 거리에 불빛이 하나둘 켜지기 시작한다. 때를 맞춰 노숙인들이 급식소 앞으로 하나 둘씩 모여들기 시작한다. 저녁 8시 배식시간이 되자 길게 늘어선 줄 사이사이에 못 보던 얼굴들도 눈에 띈다. 김무근 씨는 배식하는 틈틈이 오늘 오지 않은 사람은 없는지, 한 사람 한 사람씩 얼굴을 확인한다. “경기가 좋지 않으면 노숙인들이 늘어납니다. 또 노숙인들이 날씨가 추워지면 따스한 곳을 찾아 이곳 대구로 많이 내려옵니다. 처음에는 6시에 배식을 했는데, 지금은 저녁 8시로 배식시간을 바꿨습니다. 아침까지 허기도 덜하고, 밤늦게까지 배가 부르면 술도 덜 마시게 되니 일석이조인 셈이지요.”

새로운 출발을 돕는 희망 전도사

김무근 씨의 선행은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그는 노숙인들이 건강한 사회인으로 재출발을 할 수 있도록 일자리를 알선하고 다양한 지원을 펼치고 있다. 지난 2004년 대구사회복지 공동모금회에 건의해 노숙인들이 겨울철에 지낼 수 있는 쉼터를 마련했으며, 1995년부터 2005년까지 노숙인 54명에게 공공근로와 취로사업 등의 일자리를 주선했다. 또 2000년부터 지역의 중소기업을 찾아다니며 28명의 노숙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었다. 그 과정에서 노숙인들이 적은 비용으로도 거처를 마련할 수 있도록 지역 주민들을 찾아다니며 설득하기도 했다.
“따뜻한 한 끼의 밥이 희망이 되고, 주민들의 이해와 작은 배려가 이들이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하는 힘이 될 것이라고 믿습니다.” 그의 이러한 노력으로 지난 1998년 어린 자녀와 노숙을 하던 사람이 김 씨의 도움을 받아 거처 마련과 자활에 성공해 지금은 만물상을 운영하며 살고 있다.

안전하고 따뜻한 동네를 만드는 마을지킴이

급식을 끝내고 뒷정리를 마치고 나자 시계가 어느덧 밤 10시 가까이를 가리킨다. 방금 전까지 앞치마를 두르고 설거지를 하던 김무근 씨가 이번에는 방범대원 옷으로 갈아입고 방범대 초소로 향한다. 초소에는 김 씨와 같은 근무복을 입은 자율방범대원들이 하나둘 모여들기 시작한다. 김무근 씨는 이곳 칠성동 자율방범대 대장이기도 하다. 89년부터 자율방범대 활동을 해왔으니 벌써 24년째이다. 대원들에게 순찰활동과 근무지침을 설명하고 순찰차에 오른 그에게서 지역사회 지킴이의 위용과 기품이 우러난다.
최근 우범지대였던 역 주변의 골목도 달라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주민들은 이런 현상이 김 씨가 밤낮을 가리고 않고 봉사를 펼친 덕분이라고 입을 모은다. 반평생 칠성동 골목을 따뜻하게 밝힌 김무근 씨가 바로 우리 사회의 진정한 공로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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