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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근로자의 마음까지 돌봐주는 ‘인술의 실천자’

최윤근

통증클리닉 전문의 최윤근 박사는10년 넘게 외국인 근로자들을 무료로 진료해왔다. 그 동안 그는 45,000명의 외국인 근로자를 진료해주었고, 수술이나 입원이 필요한 환자는 큰 병원과 연계해 치료를 도와주었다. 다른 사람들의 건강을 돌보다 보니 정작 자신의 건강은 지키지 못해 암 투병 중인 최 박사. 하지만 그는 요즘도 무료진료를 계속해나가고 있다.

종합병원 수준의 무료진료소 10년째 운영

매주 일요일이면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에 있는 한 보건소에는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무료진료소’가 열린다. 30여 평 남짓한 이 진료소의 진료시간은 오후 1시부터 4시까지이다. 일주일에 한 번, 그것도 오후 4시간 동안만 여는 진료소이지만 지금까지 약 45,000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이곳에서 진료와 치료를 받았다. 진료과목도 내과·통증클리닉·안과·치과·피부과 등으로 구색을 갖춰 거의 종합병원 수준의 진료를 고루 받을 수 있다. 이 진료소의 소장인 최윤근 박사는 2008년부터 여섯 차례 걸친 암수술을 받았다. 최 박사는 지금도 완쾌된 상태는 아니지만 주말 무료진료소 일을 소홀히 하는 법이 없다.
이곳에는 하루 평균 100여 명의 외국인 근로자들이 찾아온다. 이들을 총 50명의 의료봉사자들이 힘을 합쳐 진료를 한다. 이곳의 진료수준은 무척 높다. 특히 안과는 진료소 내에서 백내장 수술도 가능할 정도의 전문 장비를 갖추고 있다. 좀 더 정밀한 진단이나 수술, 입원이 필요한 경우에는 사회복지단체나 대형 병원의 도움을 받는다. 그래도 무료진료소 재정으로 충당하기에는 늘 어려움이 많다. “암 환자의 경우 600만원부터 1,000만 원 정도의 비용이 듭니다. 처음엔 후원자도 많았는데 10년이 지나니 딱 두 곳만 남았어요. 그래도 다행인 점은 자원봉사를 하는 의사들이 자신의 병원에 데려가 각막이식 수술이나 부상 치료수술 등을 해주며 헌신해주고 있다는 것입니다.”
2002년 1월 최 박사가 첫 무료진료를 시작했을 때는 8명의 환자가 다녀갔다. 그러더니 그 다음 주부터는 소문을 듣고 수십 명의 환자가 몰려들었다. 아파도 병원에 갈 엄두 조차 내지 못하던 외국인 근로자들이 많았던 것. 진료 초기에는 환자들의 수술·입원비를 모두 최 박사의 돈으로 치렀다. 그가 근무했던 차병원, 한일병원 등과 연계해 환자들이 계속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다보니, 비용이 점점 불어나 천만 원이 넘는 빚을 지기도 했다.

몸과 마음의 아픔까지 어루만지는 인술

최윤근 박사는 의대를 졸업한 후 1974년에 미국으로 건너가 전문의가 되었다. 20년간 미국에서 활동하면서 그는 한국인 이주자들이 타국에서 겪는 고충을 옆에서 고스란히 지켜봐왔다. “모두 집안을 일으켜보겠다고 온 동포들이에요. 어렵고, 힘들고, 남들이 꺼리는 일을 해야 돈을 벌 수 있기에 고생들을 많이 하죠. 안 그래도 힘든데 이민자들이나 불법체류자들에게는 병원 문턱이 참 높아요. 일 년간 피땀 흘려 모은 돈을 고스란히 병원비로 내는 사람도 보았어요.” 최 박사는 미국에 있을 때도 이런 동포들을 많이 도와주었다.
한국에 돌아온 이후, 최 박사는 4년간 성가복지병원에서 토요일마다 의료봉사 활동을 하면서 행려자나 극빈자를 진료 했다. 최 박사는 그때 외국인 근로자들도 치료했는데, 수술 후 그들을 돌봐주는 이가 하나도 없는 모습을 보면서 한 가지 결심을 굳혔다.
“미국에서 불법체류 하던 동포들이 겪었던 고통을 한국에 있는 외국인 근로자들도 똑같이 겪고 있었어요. 코리안 드림을 꿈꾸며 머나먼 타향에 온 그들에게 의사인 제가 할 일은 한 가지뿐이었어요.”
그는 지난 2002년 대학 동료와 후배 등을 설득해 30명이 뜻을 모아 외국인 근로자 무료 진료팀을 결성했다. 혼자서 시작했다면 막막했겠지만 동료 교수들과 의과대학 봉사동아리 학생들, 자원봉사자들의 헌신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라며 최 박사는 감사의 마음을 전했다. 이들 덕에 10년이라는 기간 동안 무료진료소를 운영할 수 있었다고.
최윤근 박사는 해마다 설날이면 무료진료소에서 떡국파티를 연다. 텅 빈 도시에 남아 가족들을 그리워할 외국인 근로자들을 위한 것이다. 필리핀·방글라데시·파키스탄 등 동남아시아와 조선족 출신 이주 근로자들이 한 자리에 어울려 맛있는 설음식을 나누어 먹고, 노래자랑도 한다. 이 날에는 최윤근 박사의 가족도 봉사에 함께 한다. 다양한 지구촌 사람들과 어울리면서 그들의 외로운 마음까지 보살피는 것도 의료봉사의 하나라고 그는 강조한다.
그의 치료 덕분에 위암이 완치된 70대의 중국 동포는 매주 일요일이면 제일 먼저 진료소에 나와 자원봉사를 한다. 말이 통하지 않아도 자신에게 보여준 관심과 도움에 고마워하며 보답하는 마음을 보이는 외국인 근로자들을 보면 최 박사는 행복감을 느낀다.
“피부색이나 얼굴 생김새가 달라도 질병으로 겪는 고통은 똑같습니다. 특히 낯선 타국에서 몸이 아프면 더 서럽죠. 그런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역할입니다. 그래서 그들에게 한국이 따뜻한 나라라는 인상을 남겨주고 싶습니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고, 다른 이들의 고통을 따뜻하게 어루만지는 최윤근 박사. 그는 진정한 ‘한국의 슈바이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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