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대통령표창임기종

으라차차! 이웃사랑의 등짐을 나르는 지게의 달인

임기종

‘지게의 달인’ 임기종 씨는 1970년대 새마을 운동 때나보았음직한 지게를 지고, 험한 설악산 자락을 굽이굽이 누비며 각종 물품을 운반한다. 임 씨는 소공원에서 가장 가까운 비선대 산장에서부터 울산바위 정상에 있는 간이매점까지 각종 생필품과 식료품을 지고 하루에도 몇 차례씩 구슬땀을 쏟으며 산을 오르내린다. “아직까지 허리 아픈 줄 모르고 살았어요. 처음에는 다리에 알이 배고, 등에는 피멍이 들기도 했지요. 그런데 일 년쯤 지나고 나니 근육이 탄탄해져 힘든 느낌이 없어지더라고요.”

설악산을 넘나드는 나눔의 천사 지게꾼

새로 산 등산화의 밑창이 몇 달 만에 구멍이 나도록 산을 오르내리는 일이 그의 직업이다. 키 157cm, 몸무게 58kg의 왜소한 체구의 임기종 씨. 그가 분주히 산을 오르내리며 짐을 나른 덕에 오늘도 등산객들이 편하게 산장에서 요기를 하며 달콤한 휴식을 취할 수 있다.
“열다섯 살에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어머니는 6남매를 버려두고 집을 나가셨어요. 당장 먹고 살아야 했기 때문에 이발소 보조, 목공소 목공, 연탄 지게꾼에 목욕탕 때밀이까지 안 해 본 일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등짐을 지게 되었는데, 몸에 맞는 옷을 입은 것처럼 저에게 딱 맞더라고요. 또 산속으로 들어가 자연을 접하면 편안한 느낌이 들었어요. 집처럼 편안하고, 부모님의 품처럼 아늑한 느낌이었습니다.”
그렇게 부모님을 만나러 가듯 그는 매일 산을 올랐다. 그가 산을 오를 때면 그의 마음속에 쌓여있던 근심과 걱정도 다 사라지는 듯 했다. 그래서 그는 험준한 설악산을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는 곳까지 구석구석 누비며 다녔다.

아버지의 마음으로 시작된 나눔

임기종 씨와 가정을 꾸린 아내도 산이 인연이 되어 만났다. “설악산을 자주 찾던 한 등산객으로부터 정신지체 2급 장애를 가진 집 사람을 소개 받았습니다. 이 사람을 내가 아끼며 평생 살고 싶은 생각이 들어 결혼했죠. 함께하고 난 후, 늘 집사람에게서 고운 마음씨를 배웁니다.”
1983년 결혼한 임씨는 그해 아내와의 사이에서 소중한 첫 아들을 낳았다. 하지만 그 아이는 정신지체 장애를 안고 태어났고, 아내와 아이 모두를 그가 돌보아야 했다. 하지만 빠듯한 살림과 바쁜 일 탓으로 고민 끝에 아들을 장애인보호시설에 맡겼다. “일 년에 몇 번씩 아내와 함께 아들을 만나러 갑니다. 이것저것 챙겨가 아들과 함께 있다가 오는데, 아이가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습니다. 아들을 만나고 오면 마음이 아파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산을 오를 기운도 쭉 빠지는 듯 했습니다.”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이 붉어진 임기종 씨의 말이 이어진다. “사실 처음에는 죄 많은 아버지의 속죄로 봉사를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봉사할 마음을 먹고 나니 속이 편해졌어요.” 설악산 지게꾼의 봉사는 이런 연유로 시작되었다. 길을 걷다가도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들과 장애인들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그는 어디를 가도 주변을 살피며 어렵고 힘든 이웃들을 도와주기 시작했다.

사랑을 실어나르는 행복한 지게꾼

1992년부터 그는 본격적인 이웃돕기에 나섰다. “등짐을 날라서 번 돈에서 조금씩을 따로 떼어 모았습니다. 그것이 조금 쌓이면 주변의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에게 주었지요. 혼자 사는 어르신들은 때마다 식사를 할 형편이 못되니, 쌀과 라면을 조금 사다드리고, 또 제 아들과 비슷한 장애를 가진 아이들이 있는 곳에는 과자와 생필품 등을 사다주고 했습니다.” 남을 돕기 시작하자 삶에 오히려 활력이 생겼다고 임 씨는 말한다.
“산을 타면서 몸이 한결 가벼워진 느낌이 드는 거예요. 등짐도 더 열심히, 더 많이 운반했습니다.” 그렇게 등짐을 운반해 번 돈으로 임씨는 1994년부터 사회복지시설과 특수학교 4곳을 정기적으로 방문하기 시작했다. 또 시간이 날 때면 그는 혼자 사는 노인들을 찾아가 말벗이 되어 준다. 2002년부터는 이들 어르신들을 모시고 해마다 효도관광을 다녀오고 있다. 임씨는 지난 2005년 ‘강원도 봉사대상’의 상금으로 받은 8백만 원을 모두 효도관광 비용으로 썼다. “형편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장학금도 주고 싶고, 병든 어르신들의 치료도 해드리고 싶습니다. 마음만 같아서는 어려운 이웃들을 모두 돌봐드리고 싶습니다. 더 하고 싶은데 못 해서 마음이 짠할 뿐입니다.”
자신도 어려운 형편인 임 씨는 등짐을 날라 번 돈의 대부분을 이웃돕기에 쓰고 있다. 그러면서 13평의 작은 임대아파트에서 이 기간 동안 장애가족수당과 생계 보조비를 합친 돈으로 살림을 꾸려나간다. 작은 집에서 어렵게 살지만 마음만큼은 누구보다도 넉넉하다. 임기종 씨는 착하디 착한 아내와 함께 살며 더없이 행복하다고 말한다. 돈은 없어도 이웃에게 나누며 봉사하는 마음만큼은 넉넉한 임기종 씨. 그는 이웃들에게 나눠줄 사랑을 등짐에 가득 싣고 나르는 ‘행복과 희망의 지게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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