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대통령표창신상봉

“목숨 바쳐 이웃 생명 구한 아빠가 자랑스러워요!”

신상봉

2011년 8월 7일 부산 해운대 청사포 포구의 앞바다. 한여름 낮 시간의 포구였지만 사람이 많지는 않았다. 상당히 큰 규모의 태풍이 몰아닥칠 것이란 일기예보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인지 포구에는 아침부터 선박들이 닻을 내리고 정박해 다가올 태풍에 대비하고 있었고, 스피커에서는 ’태풍으로 인해 너울성 파도가 있을 수 있습니다. 안전사고에 주의 하세요’라는 방송이 거듭 울려 퍼졌다.

의인 신상봉 씨가 떠나던 날

일기예보대로 이날 오후 무렵부터 바람이 거칠어지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다가올 태풍의 위력을 아직 실감하지 못한 채 여전히 포구에 머물러 있었다. 흰 등대 앞의 방파제에도 거친 파도가 하얀 포말을 일으키며 연신 벽을 때리고 있었다. 그래도 한 무리의 사람들은 피하지 않고 점점 거칠어지는 바다를 바라보며 방파제를 따라 거닐고 있었다. 오랜만에 친구들과 함께 이곳을 찾았던 신상봉 씨는 점점 바람이 거세어지는 것을 보고 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아침에 아내 김혜정 씨(38세)가 한 걱정스런 말투가 생각났기 때문이었다. “큰 태풍이 온다고 했어요. 바람이 많이 불테니 조심해야 해요.” 큰 바람이 불어닥칠 때마다 사람들은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해 휘청거렸다.
그러던 중 어디선가 외마디 비명이 들려왔다. 신 씨와 사람들의 시선이 향한 곳은 등대 앞 방파제 끝. 집채만 한 너울이 들이닥쳐 한 여성을 순식간에 쓸고 가버린 것이었다. 물에 빠진 여성은 살려달라는 말을 외치며 물속에서 힘겨운 자맥질을 하였다.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 몇몇 사람은 소리를 지르고 어떤 사람은 119에 전화를 걸었지만, 모두 발만 동동 구를 뿐 아무도 선뜻 구조에 나서지 못하고 있었다.
그 순간 누군가 방파제에서 바다 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리 크지 않은 체구의 젊은 남자가 거친 파도를 헤치며 여성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그 사람은 바로 신상봉 씨. 물에 빠진 여성을 붙잡은 신 씨는 있는 힘껏 그녀를 방파제 쪽으로 밀어냈다.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은 황급히 밧줄을 던졌고, 그들의 도움으로 물에 빠진 여성은 극적으로 구조되었다. 하지만 그러는 사이 신 씨는 파도에 휩쓸려 방파제에서 멀어져 갔다. 그는 사력을 다해 파도와 맞섰지만 거듭 밀려오는 큰 파도에 일순간 바다 속으로 가라앉고 말았다. 사람들은 마지막 순간 ‘무사히 구했다’며 안도하는 신 씨의 마지막 눈빛을 본 것만 같았다.

꼭 필요한 사람들에게 장기 기증을…

그때 저 멀리서 구조대의 구급차가 소리를 내며 다가왔다. 신고를 받고 출동한 119구조대는 사고 8분여 만에 심장이 멎은 상태의 신 씨를 구조했다. 즉각 응급처치가 실시되었지만 꼭 감은 그의 두 눈은 떠지지 않았다. 신 씨는 뇌사 상태로 중환자실에 입원했고, 가족들의 간절한 보살핌에도 불구하고 사고 40여일만인 2011년 9월 21일 결국 가족의 곁을 영원히 떠났다. 향년 39세, 세상을 떠나기엔 너무 젊은 나이였다.
“평소에도 자신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면 필요한 사람들에게 꼭 장기를 기증하라고 당부했어요. 장기 기증으로 다른 사람에게 생명과 사랑을 나누는 사람들을 방송으로 보면서 자주 이야기를 했었습니다. 결혼하고 첫 아이 승민이가 태어났을 무렵, 지역 단체에 장기 기증 의사를 밝히고 인증을 받아두었죠.”
안타깝지만 신 씨가 희망했던 장기기증의 뜻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고 당시 입은 저산소증으로 장기가 심하게 손상되어 장기기증이 어렵다는 병원의 판단이 내려졌던 것. 아내 김 씨는 떠나는 남편에게 마지막 소원을 이루어주지 못해 미안하다는 말을 속삭였다.
“무슨 일이 있어 세상을 떠나게 되면 다른 사람에게 자신의 장기를 꼭 기증하고 싶다고 했어요. 그러면 다른 이들의 몸을 통해 세상을 보고 숨 쉬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친절한 상봉 씨의 따스한 사랑 이야기

어느덧 신상봉 씨가 세상을 떠난지 1년이 조금 더 흘렀다. 신 씨는 아내 김혜정 씨와 지난 2000년 결혼해 승민 군과 초등학교 1학년인 희정 양을 낳았다. 오랜 사랑 끝에 가정을 꾸린 신 씨는 홀몸이 된 어머니에게는 늘 다정한 효자였고, 아내와 아이들에게는 늘 자상한 남편이자 친구 같은 아빠였다. “사무기기를 파는 자영업을 했었어요. 늘 바빴지만 시간을 내어 집안 살림도 돕고, 아이들과도 잘 놀아주는 따뜻하고 재미있는 아빠였어요.”
신상봉 씨는 결혼을 한 뒤, 천주교 신자인 아내와 함께 성당에 다니기 시작했다. 신 씨 가족은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는 것에 늘 감사하는 사람들이었으며, 이웃에 대한 봉사에도 열심히 참여했다.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격이어서, 친구들이 ‘상봉이는 너무 착해서 탈이야’라며 면박을 주기도 했어요. 작은 아이가 태어난 뒤로는 더 많이 감사해 하고, 봉사활동도 더 열심히 했죠.” 2006년부터 그는 거제성당의 봉사회에서 매주 2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해왔다. 특히 인근 영아원을 찾아가 사랑에 목마른 아이들과 놀아주고, 청소와 빨래 봉사를 했다. 뿐만 아니라 지역에 수해 등의 재해가 발생하면 봉사회를 이끌고 가 수해 복구에 두 팔을 걷어붙였다.

남겨진 가족들의 못다한 아빠 이야기

신상봉 씨는 지난 2012년 5월 국가로부터 타인에 모범이 된 의사자로 인정받아 대전 현충원에 안치되었다. “원래는 그이를 부산 양산하늘공원에 모시고 있다가 현충원의 햇살 좋은 자리에 다시 모셨어요. 남편의 희생이 헛되지 않게 된 듯해서 감사할 뿐입니다. 언젠가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사라지겠지만, 무엇보다 우리 아이들이 아빠를 자랑스러워 할 것 같아서 기쁩니다.”
아빠와 야구를 함께 하는 것이 제일 재미있었다고 기억하는 아들 승민이는 한창 뛰어놀 나이인 초등학교 3학년. 승민이는 장차 야구선수가 되어야 할지, 외교관이 되어야 할지 고민이 많다. 그리고 올해 초등학교에 들어간 딸 희정이는 선생님이 꿈이라고 수줍게 말하고는 엄마의 품 속을 파고든다.
남편이 떠나면서 생긴 김 씨 마음속의 빈자리를 채워주는 것은 항상 밝게 울리는 아이들의 웃음이다. 성모상 앞에는 얼마 전 아빠의 생일을 맞아 아들 승민이가 써놓은 편지가 놓여있다.
“아빠, 생일 축하합니다. 아빠가 자랑스럽습니다. 승민이가 엄마 잘 지킬 테니, 아빠도 하늘나라에서 우리 가족 지켜주세요. 아빠, 사랑합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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