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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통령표창금동옥

두 바퀴로 희망을 전하는 ‘휠체어 탄 기업가’

금동옥

가난했지만 씩씩하고 당당한 청년이었던 금동옥 씨. 그는 불의의 사고로 하루아침에 1급 장애인이 되었지만, 비관하거나 원망하지 않고 재활에 힘썼다. 그리고 자신이 다니던 휠체어 회사에서 터득한 노하우로 지난 2001년에 휠체어 사업을 시작했다. 누구보다 장애인의 아픔을 잘 이해하기에 나눔과 봉사에도 열성인 금동옥 씨. 그는 휠체어를 탄 당당한 청년 기업가다.

내 인생에 좌절은 없다. 청년 동옥의 꿈

(주)휠라인 대표 금동옥 씨는 중학생 때 아버지를 여의었다. 가장을 잃은 가족들은 그때부터 생활고에 시달렸다. 하지만 금 씨는 젊음이라는 자산이 있기에 두려울 것이 없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취업해 가족의 생계를 돕기 시작했다. 새벽엔 신문배달과 우유배달을 했고, 낮에는 자동차정비사로 기술을 배우며 일했다. 그럼에도 지치지 않고 저녁엔 운동으로 체력을 다지는 청년이었다.
그러던 1994년 어느 날, 그는 퇴근길에서 평소 알고 지내던 여성이 불량배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것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그녀를 돕기 위해 나선 그는 불량배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의식을 잃고 말았다. 병원에서 치료를 받았지만 척추신경이 손상되고 말았다. 이 일로 그는 평생을 휠체어에 의지해야 하는 하반신 마비 1급 장애인이 되었다.
하지만 그런 큰 사고도 청년 동옥 씨의 의지를 꺾지는 못했다. 그는 장애를 비관하며 주저앉을 여유가 없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주마등처럼 지나갔어요. 하지만 다친 뒤에도 가정형편이 나아지지 않았기에 더 고민하거나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죠. 내 인생은 ‘좌절금지’라는 생각으로 재기하기 위해 이를 악 물고 재활교육을 받았습니다. 그게 다행이라면 다행이었죠.”
누구보다 열심히 재활에 힘쓴 덕에 그는 건강을 되찾았고, 두 팔로 씩씩하게 휠체어를 밀며 병원 문을 나서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다시 시작했다. “휠체어를 타고 다니다 보니 좀 더 나은 휠체어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휠체어 업체에 취업해 4년 동안 일하고, 공부하며 노하우를 쌓았습니다.”

국내 최초로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 성공

그렇게 기술을 익히던 금 씨는 자신이 직접 휠체어를 만들어보자는 생각을 품게 되었다. 대부분의 휠체어가 수입에 의존해 값이 비싼 데다 우리나라 사람의 체형에 맞지 않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었다. “매일 타야 하는 휠체어가 정작 우리 몸에는 잘 맞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고장이라도 나면 수리할 곳도 마땅치 않았어요. 국내에서는 수리조차 어려웠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활동이 어려운 장애인들이 이중 삼중의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실정이었죠.”
그래서 금 씨는 휠체어를 직접 만들겠다는 꿈을 실천에 옮기기로 작정했다. 몇 년간의 준비 끝에 그는 2001년 (주)휠라인이라는 업체를 설립해 기술자에서 사업가로 새롭게 출발했다. “회사라고 해봤자 사실 자그마한 작업장에 기계 몇 대 있는 게 전부였습니다. 사장인 저 혼자 휠체어를 개발하고 만들다시피 했습니다.”
금 씨 특유의 불타는 의지에도 불구하고 그는 수많은 시행착오를 겪어야 했다. 그 때마다 가장 큰 힘이 되어 준 사람은 바로 그의 곁에서 묵묵히 궂은일을 도맡아 챙긴 아내 김경자 씨였다. 실패에도 굴하지 않는 금 씨의 열정과 의지, 아내의 묵묵한 헌신과 내조가 드디어 결실을 맺어 2008년 스포츠용 휠체어를 자체 기술로 제작하기에 이르렀다. 하지만 이런 쾌거에도 불구하고 현실은 순탄하지 않았다. 검증 안 된 금 씨의 휠체어를 사용하겠다고 선뜻 나서는 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한 선수가 찾아왔어요. 낡은 휠체어 때문에 제 실력을 발휘 못하는 것 같아 저희 제품을 권했어요. 선수의 장애 유형과 신체에 맞게 일종의 맞춤식 휠체어를 만들어 준 거죠. 그랬더니 그 선수가 날개 달린 호랑이처럼 코트를 누비며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 선수가 바로 장애인 배드민턴 국가대표 심재열 선수였다. 심 선수는 2010년 광저우 장애인아시안게임과 2011년 세계장애인선수권대회에서 연속으로 금메달을 따는 쾌거를 이룩했다.

스포츠용 휠체어로 장애인 스포츠에도 힘써

덕분에 금동옥 씨의 사업도 활기를 띠었다. 금 씨는 현재 스포츠용 휠체어 제작에 심혈을 기울이며 장애인 스포츠 활성화에도 앞장서고 있다. “집에서는 실내복, 외출할 땐 외출복, 운동할 땐 운동복을 입는 것처럼 휠체어도 기능에 따라 실내용과 외출용, 스포츠용이 필요합니다. 장애인들이 일반인들처럼 사회생활을 하려면 운동을 해 체력을 키워야 하는데 그럴 땐 스포츠용 휠체어가 꼭 필요합니다.” 현재 금 씨가 제작하는 휠체어는 농구·배드민턴·테니스·사격·탁구·컬링·양궁·럭비 등 다양한 종목을 아우른다. 여기에 생소하게만 느껴지는 댄스스포츠용 휠체어까지 만들고 있다.
금 씨는 자신이 장애인이기에 어려운 형편에 있는 이웃들의 아픔을 누구보다 잘 이해한다. 그렇기에 자신이 가진 것을 아웃들과 나누고자 결심하고 직접 만든 휠체어 12대를 사회에 내놨다. 금 씨의 휠체어는 대당 4백만 원이 넘는 고가의 장비로서 국가대표선수촌, 장애인체육회, 국가유공자 등에게 기증되었는데, 넉넉하지 않은 회사사정을 감안할 때 값지고 소중한 나눔이었다. 이와 함께 그는 2008년부터 장애인 럭비 국가대표 대회장을 맡고 있으며, 장애인 훈련원을 50차례 이상 방문해 휠체어 무상 수리 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그는 제조사를 가리지 않고 고장 난 휠체어를 수리해 준다.
“금산에서 고객 한 분이 오셔서 하소연을 하더군요. 근처에는 수리할 곳도 없고, 휠체어 산 곳에서는 단종된 제품이라 못 고친다고 해서 물어물어 여기까지 왔다고요. 그런데 제가 그것을 10~20분 만에 고쳐드리니 눈물을 흘리시는 거예요. ‘다른데서는 모두 못 고친다고 했는데’ 하면서요.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었는데 마음이 찡했어요.”
그는 장애인들이 보다 편리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꾼다. 그래서 회사 직원도 장애인을 우선해서 뽑았다. 직원 13명 중 8명이 장애인이다.

국민추천포상 이어 휠체어 수출포상에 도전

그가 운영하는 (주)휠라인은 이제 스포츠용 휠체어 시장에서는 독보적인 존재이다. 그의 회사는 장애인 복지에 기여한 공을 인정받아 지난 2011년에는 사회적 기업 인증을 받기도 했다. 하지만 꿈이 있는 금 씨의 도전은 여기서 끝나지 않는다. 사고 이전에 자동차 관련 사업을 하고 싶어 했던 그는 현재 종합적인 장애인 이동수단을 운영하는 사업을 구상 중이다.
올해 제2기 국민추천포상을 수상하면서 “앞으로 더 잘하라고 주는 상으로 여긴다. 대통령표창을 받았으니 이제는 국내 기술로 만든 휠체어를 수출해 수출 포상을 받고 싶다”며 청년 기업가로서 당당히 포부를 밝혔다. 의지와 희망을 잃지 않을 때 장애는 극복 가능한 불편함일 뿐이라는 사실을 몸소 보여주는 금동옥씨. 오늘도 그의 미소에서 희망을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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