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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포장정갑연

염소 키워 모은 돈을 장학금으로 기부한 산골마을 ‘염소 할머니’

정갑연

평생 일만 해온 할머니는 허리가 완전히 굽었다. 팔십 나이를 훌쩍 넘긴 할머니에겐 이제 허리 한 번 펴는 것도 큰 일이 된 셈이다. 깊은 산골 오두막에서 30여 년 넘게 염소를 키워 모은 돈 1억 원을 지역학교에 장학금으로 맡긴 ‘염소할머니’ 정갑연 씨. 홀로 깊은 산 속에서 사는 할머니지만 누구보다도 따스한 마음으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

첩첩산중 오두막엔 염소 할머니가 산다

경남 함양군 안의면 산골마을에 살고 있는 염소할머니를 찾아갔다. 안의면에서 길을 물어 하비마을회관 앞에 도착하자 네비게이션이 더 이상 제 기능을 하지 못했다. 다시 경사가 가파른 산길을 10여분 남짓 오르자 기백산 자락 깊숙한 곳에 덩그러니 할머니의 작은 오두막이 나타났다. 작은 집 한 채와 그 곁에 자리 잡은 염소막. 가까이 다가가 숨을 돌리자 눈앞으로 멀리 지리산 줄기가 보이고, 뒤편으로는 큼지막한 산이 병풍처럼 할머니의 작은 산막을 품고 있다. “아따 멀리서 뭐 볼 거이 있다고 왔능교. 물이라도 한 잔 할랑갑소. 방으로 드갑시데이.” 산에서 염소를 돌보던 할머니가 반쯤 굽은 허리를 힘들게 펴고 앞장선다. 집까지 이어진 길에 염소들의 사료가 여기 저기 놓여 있다. “염소를 산에서 풀어놓고 키워야 혀서, 마을에서도 제일 높은 집이지라. 그래야 염소들을 사방으로 풀어놓고 키울 수 있단 말이요.”
“연료비가 비싸서 불을 안 때니께 쪼매 추버요.” 홀로 지내는 할머니의 방이 조촐하다 못해 썰렁하기까지 하다. 가구라고는 달랑 TV 1대 뿐. 이외에 때 묻은 이부자리와 작업복으로 입는 옷가지 몇 점이 전부다. 하지만 썰렁한 할머니의 방 여기저기에는 따스한 온기가 배어있다. 할머니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전국 각지에서 보내 온 감사 편지와 글귀들이 방 한 쪽 벽을 가득 메우고 있는 것. ‘할머니, 킹왕짱! 할머니 멋있으세요. 완전 반했어요. 싸인 좀 받고 싶어요’ 등 학생들이 쓴 익살스럽고 장난기 가득한 짧은 글에서 염소 할머니에 대한 순수한 감사의 마음이 묻어난다.

돈 아끼려고 팔 부러져도 병원에 안 가

정갑연 할머니가 이 산골 오두막에서 염소를 키우며 살아온 세월만 30년이 넘는다. 할머니는 산 아래 마을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을 보냈고, 어른이 되어서 서울 등에서 혼자서 객지생활을 하다가 쉰 살 때쯤 모든 것을 접고 고향으로 돌아왔다. “그때까진 막노동판에서 일을 했지. 배운 게 없고 특별한 기술이 없으니 할 일이 뭐 있나? 공사판에서 시멘트도 나르고, 또 몸이 작으니 작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일을 했지. 큰 빌딩에 있는 환기통, 닥트라고 알어? 그거 청소도 하고 그랬어.”
고향으로 돌아온 할머니는 ‘엄골’이라는 곳에 논과 밭을 사고, 염소를 키우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몇 마리 되지도 안했어. 염소를 정성시럽게 4년을 키워야 에미가 되는데, 그게 여간 손이 많이 가는 게 아니야. 염소 키우면서는 여간해서는 한 발짝도 못 움직이지. 하루 종일 염소 뒤치다꺼리를 하다보면 하루해가 얼매나 짧은 지 몰러. 딴 짓 할 거이 없으니 오히려 마음이 편해.”
심지어 할머니는 국민추천포상 수여식에 참석하러 청와대에 가는 날에도 염소 걱정 때문에 당일 새벽에야 군청 차량을 타고 올라갔다가 행사가 끝나자마자 내려올 정도였다.

이웃사랑을 실천하고 싶다는 할머니의 평생소원

가족이 없는 할머니는 밭에서 직접 기른 채소와 된장으로 끼니를 때우고 검소한 생활을 하며 세상을 잊고 살았다. 할머니는 염소를 키워 마릿수가 늘어나면 한두 마리씩 장에 내다 팔며 조금씩 돈을 모았다. 한 해는 할머니가 염소먹이를 뜯으러 나무 위에 올라갔다가 떨어져 팔이 부러지기도 했다. 작은 사고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나뭇가지를 덧대어 부목으로 삼고 병원에도 가지 않았다. 병원비를 아끼려는 마음에서였다.
그러던 할머니는 작년 말 안의면 면장을 찾아가 그녀가 평생 동안 힘들게 모은 돈 1억 원을 고향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써달라는 뜻을 전했다. 그동안 염소를 키워 모은 돈 중에서 최소한의 병원비와 생활비만을 뺀 전 재산을 지역 학생들의 인재 육성 장학금으로 기부한 것이다.
“평소 이웃을 돕고 사는 사람들이 참말로 부럽드만, 자식도 없는 내가 더 늦기 전에 좋은 일 한 번 해봐야지 하고 면장님께 부탁을 했지. 이왕이면 동네에서 가난하지만 열심히 공부하는 학생들을 위해 써주면 좋겠다고 말이야.”
할머니의 기부금 전액은 올해 초 함양 안의고등학교에 장학금으로 전달되었다. 장학금을 전달받은 안의고등학교 교장은 “기부금은 할머니의 뜻에 맞게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아닌, 효행·예절·봉사 등에서 뛰어난 인성을 발휘한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운영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더 큰 사랑으로 퍼져가는 할머니의 마음

할머니의 이러한 마음은 함양군 전체로 퍼져나갔다. 안의고 학생들이 할머니의 뜻을 이어받아 전교생 169명 중 108명이 ‘1인 1나눔 계좌 갖기 운동’을 시작한 것. 정갑연 할머니의 나눔의 정신을 이어받아 어려운 동료 학생을 위해 자발적 모금 운동을 펼쳐가고 있는 것이다.
이 소식을 전해들은 정 할머니는 요즘처럼 행복한 때가 없다고 말한다.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기특한 학생들과 이웃들 덕분에 뿌듯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현재 할머니는 국가에서 지급하는 노령연금 대상자이다. 하지만 할머니는 그 보조금을 일절 받지 않고 있다. “내는 아직 일을 할 수 있고, 먹고 사는 데도 지장이 없으이. 그 돈으로 차라리 어려운 사람을 더 도와줘.” 홀로 염소를 키우며 살아가는 할머니의 이웃 사랑과 나눔의 향기가 싱그러운 바람을 타고 산동네를 넘어 온 세상에 가득 퍼져나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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