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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이진용

끊임없이 20억 원이 넘게 기부한 ‘36년 기부인생’

이진용

충주시 호암동에서 건축자재상을 하는 이진용 씨는 지역에서 ‘나눔 봉사 대부’로 통한다. “형편이 어려울 때도 불우한 이웃을 돕는 것이 진정한 봉사”라고 힘주어 말하는 그를 두고 사람들은 고집이 센 착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이 씨가 지난 36년 동안 한 해도 빠짐없이 불우이웃을 위해 성금과 성품을 전달하고 있기 때문이다.

청년 진용 씨의 아름다운 출발

충청북도 충주시 호암동에 위치한 (주)아성기업은 충주에서 건자재업으로 기반을 닦은 대표적인 지역 중소기업이다. 이 회사의 대표인 이진용 씨. 이십대 중반부터 36년 간 줄곧 이어져 온 이 씨의 봉사인생은 1976년부터 시작되었다.
“제일 먼저 월급을 쪼갠 돈으로 학용품을 사서 학교를 찾아갔습니다. 당시만 해도 시골아이들은 가정형편이 어려웠어요. 공책이며 연필도 변변치 않았죠. 그런데 갈 때마다 학용품을 선물하니, 아이들이며 선생님들이 무척 좋아하더라고요. 그래서 형편이 되는대로 조금씩 돈을 모아서 돕기 시작했습니다.” 이 일을 계기로 이진용 씨는 무엇이든 조금씩 모으는 대로 어려운 환경에서 공부하는 학생들에게 도움을 주기 시작했다. “결혼하기 전이었고 한창 젊을 때였으니 저야 밥 안 굶고 일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했습니다.”

사업 실패에도 계속된 기부의 습관

그의 선행은 결혼을 한 뒤에도 계속되었고, 1978년 충주시 봉방동에 건재상을 차리며 사업도 자리를 잡았다. 그러던 1981년 여름 그에게 불행이 찾아왔다. 가뭄이 극심했던 제천시에 성금 2,300만원을 기부하고 충주로 돌아오는 길에 교통사고를 당한 것이다. 갑작스런 사고로 이 씨는 6개월간 병원 신세를 지게 되었고,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방치된 사업은 내리막길을 걷다가 급기야 부도가 나고 말았다.
“사업 실패로 밥을 굶어야 할 정도로 어려웠습니다. 아이들은 둘인데 하루하루 끼니 이어갈 걱정을 해야 했으니까요. 네 명의 가족이 3평짜리 단칸방에서 생계를 꾸려가야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좌절하지 않았고, 가족을 부양하기 위해 무슨 일이든지 하려고 나섰다. 그는 탄광 광부와 막노동 등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으며 생계를 이어갔다. 당시 한 달을 꼬박 일해 그가 받을 수 있는 월급은 50만 원 정도. 하지만 힘겨운 생활 속에서도 그의 나눔은 계속되었다. “한 달 일해서 버는 돈이 고작 50만원이었는데, 그 중 30만원을 뚝 떼어 가지고 가니 어느 누가 좋아하겠어요, 가족들이 저를 많이 원망했죠.”

나눔과 기부의 습관이 신념이 되다

그는 당시 자신의 어려운 형편에도 불구하고 1981년부터 1990년까지 10년 동안 기부를 계속했다. 제법 목돈이 될 만큼 모인 돼지 저금통까지 깨서 맹인학교에 기부할 정도였다.
특유의 성실함 덕인지 꾸준한 선행에 대한 보답인지 그는 1990년 초 충주시 호암동에 건자재상을 차리면서 재기하게 되었다. 형편이 나아지자 이진용 씨는 불우 이웃돕기에 더욱 열성적으로 나서기 시작했다. “이 지역에서 오랫동안 장사를 하며 자리를 잡았고, 큰 규모는 아니지만 우리 식구들 입에 풀칠할 정도로는 먹고 삽니다. 큰 욕심을 내지 않는 편이어서 그저 아무 탈 없이 사업이 운영되는 것에 만족하고 있습니다.” 본인에게는 사업에 필요한 만큼의 돈만 있으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이진용 씨는 늘 주변의 어려운 이웃을 찾아 자신이 도움을 줄 수 있는 방법을 찾아 고민한다.

참고집이 센 사람, 이진용 씨의 참된 삶

오랜 세월동안 선행을 해온 만큼 이진용 씨의 나눔은 무척 폭넓고 다양하다. 집 근처의 노인복지관에는 식비를 지원하고, 재해가 발생하면 지역을 가리지 않고 복구성금을 보낸다. 그것도 모자라면 아예 자재를 트럭에 싣고 가서 지원을 한다. 월남전에 참전했던 고엽제 피해자가 어렵게 산다는 말을 듣고는 직접 집에 찾아가 도와주고, 불우한 이웃에게는 쌀과 연탄을 보내주기도 한다. 이밖에도 이진용 씨는 독거노인, 장애인, 소년·소녀가장, 백혈병 투병 어린이 등에게 크고 작은 성금을 전달하는 등 일일이 열거하기 힘들 정도로 다양한 선행을 펼쳐왔다. 이렇게 해서 지금까지 그가 기부한 금액은 무려 20억 원에 이른다.
이 씨는 아직도 돼지저금통에 동전을 모은다. 회사를 운영하며 바쁘게 일을 하다가도 그는 문득 생각이 나면 그는 시청에 전화를 걸어 도울 일이 없는지를 묻는다. 젊은 시절부터 쌓아온 기부 습관이 이제는 인생을 살아가는 방식이 되어버린 이진용 씨. 그는 앞으로도 목숨이 붙어 있는 한 변함없이 나눔을 실천 할 것이라고 말한다. 일평생에 걸친 그의 고집스러운 나눔의 삶이 바로 우리 사회를 따뜻하게 밝혀준 모닥불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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