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이상차

“남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는 것이 제 삶의 철칙입니다”

이상차

40여 년간 소외계층에 총 2억 원 상당 물품 기부한 ‘국내 최장기 기부자’

세 살 때 남한으로 내려와 홀어머니 밑에서 자란 이상차 씨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밥 한 공기를 세 번에 나눠 먹는 일이 잦을 정도로 가난했다. 사는 것이 너무 힘들어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도 있다. 그래도 포기하지 않고 성실하게 기반을 다져 나갔다. 열일곱, 어린 나이에 배운 구두 기술로 구두공장도 차리고 구두도매상도 했다. 주변의 신용이 쌓이자 손님은 점점 몰려왔다. 그는 그렇게 정신없이 일하면서도 기부는 잊지 않아 우리나라 ‘최장기 기부자’에 이름을 올렸다.

어르신들 식사대접 시작이 독거노인 후원으로이어져

“어린 시절에 춥고 배고프고 부모사랑도 잘 받지 못했어요. 보육원 아이들을 보니 그 시절의 나 같다는 생각에 기부를 시작하게 된 거죠.”처음 기부를 시작한 건 1970년이었다. 양말, 치약, 칫솔 같은 생필품을 들고 서울시 마포구에 위치한 삼동소년촌을 직접 찾았다. 그 이후로 이 씨는 삼동소년촌의 아이들에게 크고 작은 지원을 계속했다. 소년촌의 선생님들과 동대문 시장에 가서 아이들이 사용할 학용품을 골라 선물하기도 하고, 아이들이 좋아하는 라면을 상자 채 사 가기도 했다. 지금도 이곳엔 매년 100만 원씩을 꼬박꼬박 후원한다.같은 시기 이 씨는 여름과 겨울에 경로당 어르신들에게 삼계탕이나 육개장을 대접하기 시작했다. 이후 20년 넘게 이 일을 하다가 문득 형편이 어려운 독거노인들에게 직접 도움을 드리는 것이 더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1991년부터는 독거노인에게 매월 10kg의 쌀과 생필품을 지원하기 시작했다. 추운 연말에는 내의와 연탄을 보내고, 생신이 다가오면 케이크를 보냈다. 후원하는 어르신들이 점점 늘어 이 씨가 매달 임대로 벌어들이는 수입 450여만 원 중 200만 원이 쌀값으로 나갈 정도다. 2013년부터는 독거노인들의 밑반찬 비용도 지원하고 있다. 이 씨가 매달 일정 금액의 밑반찬 비용을 대면, 5명의 자원봉사자가 반찬 20인분을 만들어 배달하는 방식이다.

자신의 나눔이 사람들에게 행복 준다면 만족해

“남에게 주는 것만으로 마음이 즐거워지고, 무언가를 준다는 건 내가 남을 좋아해야 할 수 있는 일이기 때문에 사람을 미워하지 않게 된다”고 말하는 그는 ‘남들에게 하나라도 더 주는 것’을 삶의 철칙으로 삼고 있다. 이제 기부가 습관을 넘어 생활이 된 이 씨는 쌀을 기다리는 사람들을 생각하면 기부를 멈출 수가 없다고 한다. 자신의 나눔으로 사람들에게 행복을 줄 수 있다면 충분히 만족한다며 빙그레 웃는 그가 이 시대의 ‘기부천사’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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