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포장고영초

소아 뇌종양 권위자의 또 다른 직함, ‘쪽방촌 하얀 옷의 천사’

고영초

소아 뇌종양 전문의 고영초 교수는 의대에 입학한 이후 지금까지 40여 년 간 달동네, 쪽방촌 주민과 외국인 근로자 등 가난하고 병든 이들의 질병을 무료로 진료해 왔다. 그가 진료하는 ‘전진상의원’에는 그가 그동안 진료한 3천여 명의 환자 기록이 탑처럼 쌓여 있을 정도이다. 의사로서 자신이 가진 지식과 재능, 시간을 나누는 것이 의무이자 행복이라고 말하는 그를 가리켜 사람들은 ‘하얀 옷을 입은 천사’라 부른다.

의료봉사는 내 운명

가톨릭 신부가 꿈이었던 고영초 교수는 중·고교 시절 성직자의 길을 준비했었다. 하지만 그는 신부가 될 땐 되더라도 일반 학생들과 같은 공부를 해보고 싶었다. “당시 신일고등학교에서 3학년 편입생을 모집한다는 광고를 봤어요. 750명 중에서 5명을 뽑는데 합격을 했어요. 하늘의 뜻이라 생각했죠.” 그렇게 그의 삶이 바뀌기 시작했다. 생전 배운 적 없는 미분·적분 문제가 나온 첫 수학 시험에서 난생 처음 0점을 받았다. 그 뒤로 그는 정말 죽기 살기로 공부 했고 이듬해 서울대 의과대학에 합격했다.
“의사로서 소외된 이웃을 따뜻한 마음으로 돕고 싶었어요. 신부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고, 의사는 육체의 병을 치유해 주잖아요.”
대학에 입학한 뒤 그는 이웃을 돕겠다는 결심을 실천에 옮기기 시작했다. 1973년 가톨릭학생회에서 활동하면서 매주 선배들과 함께 전기도 들어오지 않는 경기도 일대 무의촌에 찾아가 진료봉사를 했다. 졸업 후에도 그의 봉사활동은 자연스럽게 이어졌다. 1977년부터는 서울 시흥동에 있는 영세민 무료진료소인 ‘전진상의원’에서, 1987년에는 지인의 부탁으로 서울 영등포에 있는 행려자·노숙인을 위한 무료진료소 요셉의원에서 진료를 했다. 1997년부터는 2주에 한 번씩 일요일마다 혜화동 라파엘클리닉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위한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이렇게 하나 둘 늘려온 의료봉사를 지금까지 계속 이어오고 있다. “제가 한 번 시작한 일은 잘 그만 두지 못해요. 그래서 일이 늘어나면 늘어났지 줄지는 않는 것 같아요.” 그가 봉사하는 진료소 세 곳의 공통점이 있는데, 모두 설립자가 고 김수환 추기경이라는 사실이다. 알고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그는 그것이 우연이 아니라고 믿는다. 그는 봉사를 운명으로 받아들인다.

소아 뇌종양 권위자의 또 다른 직함은 쪽방촌 ‘하얀 옷의 천사’

“사실 처음엔 베푼다는 마음으로 봉사를 갔어요. 그런데 뭔가 바른 자세가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겁니다. 어느 날 전진상의원에서 진료를 하며 봉사하는 분들을 무심코 보았어요. 그 분들은 정말 기뻐하는 마음으로 봉사를 하는 겁니다. 그래서 제 자신에게 질문을 해봤죠. ‘성경말씀처럼 내가 불쌍한 사람을 예수님 대하듯이 했는가.’ 라고 말이죠. 그 뒤로 봉사에 대한 제 태도가 달라졌어요. 노숙인이나 알콜 의존증 환자가 와도 냄새가 역겹게 느껴지지 않았고, 진료도 훨씬 쉬워졌죠.”
환자와 의사 사이에 신뢰가 있어야 병도 더 잘 낫는다고 굳게 믿는 그는 많은 환자들 중에 특별히 기억에 남는 환자가 몇 명 있다. “네 살 때 뇌종양으로 2급 시각장애인이 된 환자가 있었어요. 종양 제거 수술을 해주었더니 간질증세가 사라지고 시력도 조금씩 회복되었죠.” 이제 마흔 살이 넘은 그 환자는 지금도 고영초 교수의 무료진료를 받고 있다.
지난 2006년 그는 의료봉사를 정규 수업강좌로 개설했다. 어떻게 하면 행복한 의사가 될 수 있는지, 의료 윤리나 존엄사 문제를 다루고, 국내외 다양한 봉사단체 소개와 봉사의 기쁨에 대해서도 전한다. 시험은 따로 보지 않고 소감문만을 받는데, 학생들의 반응이 좋아 전 학년의 절반에 가까운 학생들이 의료봉사에 동참하고 있다.
고영초 교수는 “귀한 생명을 살리는 방법을 배웠으니, 의료봉사는 의사로서 당연한 소명이다. 가진 것이 있으면 나누며 사는 것이 맞다”고 자신의 신념을 말한다. 그의 사명감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새 생명을 얻었고, 희망을 되찾았다. 오늘도 묵묵히 자신의 신념대로 의료봉사를 하는 ‘흰 옷을 입은 천사’ 고영초 교수. 그에게 하얀 가운은 자신의 몸이며 봉사는 삶 그 자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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