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상훈

영예의
수상자

나눔을 통해 행복을 느끼고 이웃의 안전을 살피며,
어려움 속에서도 희망을 전하는
대한민국의 자랑스러운 얼굴들입니다.

국민훈장 동백장유양선

“아이들이 맘껏 공부할 수만 있다면, 나는 늘 행복해!”

유양선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젓갈장사를 해온 유양선 할머니는 지난 37년간 초·중·고교와 대학교에 꾸준히 장학금과 책을 기증해왔다. 가난한 집안에서 태어나 많이 배우지 못한 한이 컸던 유 할머니. ‘가난한 학생들이 돈 걱정 없이 마음껏 공부하게 하고 싶다’는 그녀의 바람이 어려운 학생들에게 따뜻한 희망이 되고 있다.

안 입고 안 먹고 안 쓰고 모은 돈 아낌없이 나눠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의 젓갈 가게 마당. 빽빽하게 늘어선 각종 수산물과 젓갈가게 사이에서 멀리서도 유독 눈에 띄는 할머니 한 분이 있다. 호호 백발, 화장기 없는 얼굴에 노란 티셔츠를 입은 이 할머니가 바로 유양선 씨이다. 할머니는 새벽 6시면 출근해 밤 11시까지 꼼짝 않고 하루 17시간 동안 한 평 남짓한 가게를 지킨다. 하루 서너 시간만 자도 피곤을 모르던 그녀가 몇 년 전에 위암수술과 무릎수술을 받아 그나마 출근시간이 늦어진 것이 이렇다. 그동안 할머니는 한 여름에만 일요일을 쉴 뿐 1년 내내 휴일도 없이 일 해왔다.
새우젓·육젓·명란젓에서부터 어리굴젓·갈치속젓·광천토굴까지 다양한 젓갈들이 유 할머니의 가게에 놓여있다. 할머니가 37년 동안 노량진 수산시장에서 변함없이 일할 수 있었던 비결은 정직함과 신용이다. 장사 초창기부터 밝고 환해 눈에 잘 띠기 때문에 입었던 노란 티셔츠는 어느새 할머니의 유니폼이 되었다. 이곳에서 ‘노랑 할머니’로 불리던 유 할머니의 선행이 알려지면서 이제 그녀의 별명은 ‘기부할머니’로 바뀌게 되었다. 이제는 일부러 할머니를 찾아오는 손님들도 생겼다. “이 젓갈을 사가시면 손님이 장학금을 주는 거요” 하고 할머니는 손님들이 사가는 젓갈이 보통 젓갈이 아님을 강조한다.
팔십 평생을 검소하게 살아온 유양선 할머니는 비닐 한 장, 이쑤시개 하나 허투루 낭비 하는 법이 없다. 종이컵 하나도 커피 다섯 잔을 타서 마실 때까지 사용하고, 식사도 된장국에 김치 한 가지로 해결하기 일쑤다. 유 할머니가 안 쓰고, 안 먹고, 안 입고 돈을 모으는 이유는 단 하나다. “오로지 좋은 일만 하고 살고 싶어. 형편이 힘든 학생들을 도와주고 나면 그렇게 기쁠 수가 없어. 그래서 난 항상 웃고 살아.”

배움의 한, 기부로 승화해

유양선 할머니는 지난 30년 동안 책을 사서 전국 각지에 있는 초등학교에 보내왔다. 그동안 할머니가 보낸 책을 값으로 따지면 무려 수억 원. 할머니는 자신처럼 배우지 못한 한이 다른 사람에게서 되풀이되지 않기를 바란다. 잠시 시장이 한가해진 틈을 타 인터뷰를 하는 도중, 할머니는 젓갈통 뒤쪽의 비좁은 의자 틈에서 그동안 책을 기증받은 아이들이 그녀에게 보내온 감사편지를 꺼내 든다. ‘나라면 먹고 싶은 거 사 먹을 텐데 할머니는 어떻게 그런 생각을 했어요?’, ‘저도 할머니처럼 돈 벌면, 한 권이라도 책을 보내겠어요.’ 할머니는 아이들이 고사리 같은 손으로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쓴 편지를 읽고 있다 보면 피로가 씻은 듯이 풀리고, 다시 힘차게 일할 수 있는 기력이 솟는다고 말한다.
아이들에게 ‘책 할머니’라고도 불리는 그녀는 책을 좋아하고, 수없이 많은 책을 기증했지만 정작 자신은 장사에 바빠 여간해선 책 읽을 시간을 내지 못한다. 하지만 바쁜 와중에도 틈을 내어 할머니가 꼭 챙겨 읽는 책이 있다. 그것은 바로 소년·소녀가장의 수기집. 할머니는 이런 책을 읽으며 어려운 형편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가는 아이들이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갈 수 있게 돕고 싶다는 마음을 되새긴다.
이런 유양선 할머니가 얼마 전에 큰일을 냈다. ‘미국 하버드대학교 같은 좋은 학교를 설립하는 게 꿈’이었던 할머니가 고향인 충남 서산에 있는 한서대학교에 자신이 가진 상가와 임야 등 20억 원 상당의 부동산을 기부한 것이다. 이를 받은 한서대는 할머니의 이름을 딴 장학회를 설립하고, 그 부동산에서 나오는 연간 2,000만원의 수익을 학생들의 장학금으로 지급하고 있다.
유양선 할머니의 나눔은 이뿐만이 아니다. 할머니는 2001년에 한 전자회사 광고에 출연해 받은 출연료 전액을 기부했고, 2002년에는 《나는 한밤중에도 깨어있고 싶다》라는 제목의 자전적 에세이집을 출간해 수익금 전액을 농어촌 장학기금으로 기부했다.
어릴 적, 할머니는 책을 좋아한 문학소녀였다. 하지만 가난한 형편에다 여자라는 이유로 초등학교만 마치고 학업을 접어야 했다. 어른이 되어 결혼을 했지만 아이를 낳지 못해 힘든 시집살이를 했다. 게다가 뒤늦게 입양해 키운 딸마저 불의의 교통사고를 당해 평생 장애를 갖게 되었다. 하지만 유양선 할머니는 고난과 역경의 인생을 ‘기부’로 승화시켰다. 자신처럼 배우고 싶어도 배우지 못하는 학생들이 생기지 않도록 유양선 할머니는 더 많은 아이들을 돕고 싶어 한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이 하고 싶은 공부를 마음껏 하며 밝게 살 수 있는 세상이 되기를 꿈꾸며, 오늘도 유양선 할머니는 씩씩하게 노량진 수산시장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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