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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포장김복득

내 작은 힘 보태 더 평화로운 세상 만들고 떠나고 싶어

김복득

생계지원금 모아 기부하며 위안부 피해 알리는 ‘최고령 위안부 피해 할머니’

스물두 살 꽃다운 나이, 김복득 씨가 도착한 곳은 중국 다롄의 2층짜리 판잣집이었다. “낯선 남자가 다가와서는 공장에 취직시켜준다는 거야. 돈 벌 수 있다는 생각에 의심 없이 따라나선 거지.” 이후 김 씨는 다롄에서 3년, 필리핀에서 4년간 ‘후미코’란 이름으로 생활하며 위안부 생활을 해야 했다. 그리고 70여 년의 세월이 흘러 지금은 위안부 피해를 알리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위안부 실상 알리고 일본 정부 사과받고 싶은 바람으로 시작

김 씨는 2003년 8월 15일, 수요 집회에 참석하는 것을 시작으로 인권 활동에 나서, 적극적으로 언론 인터뷰나 각종 기자회견에 참여하며 위안부의 실상을 알리고 있다. “세상을 떠나기 전에 위안부 문제의 진상을 밝히고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고 싶었어요. 그래야 한 맺힌 내 삶이 조금이나마 위로받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 그의 활동은 국내외를 가리지 않았다. 2010년에는 위안부 피해자에 대한 대책을 세워달라는 탄원서, 의회결의문, 서명지 등을 들고 일본 도쿄 중의원 회관을 찾아 일본 관방장관 비서에게 직접 전달하기도 했다. 또한 넉넉지 않은 살림살이에도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와 역사관 건립, 역사교육 자료 제작 등을 위한 기부를 아끼지 않았다. 2013년에는 정부에서 나오는 생활보조금과 생활비를 아껴 위안부 피해자 추모비를 건립하는데 200만 원을 후원했고, 경남지역 위안부역사관 건립기금으로 2,000만 원을 쾌척하기도 했다.

지역 내 소녀 가장을 위한 후원에도 앞장서

김 씨는 위안부 실상을 알리는 일 외에 지역 내 학생들을 위한 후원도 해오고 있다. 지난 3년간 꾸준히 김 씨의 집을 방문해 집안일도 거들고 말벗도 되어준 학생들이 고마워서다. 학생들과 깊은 정을 쌓아온 김 씨는 아이들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 위해 2012년, 아껴 모아온 2,000만 원을 경남 통영여고에 기부했다. 기부금은 ‘정의 장학금’이라는 이름으로 통영여고의 기초생활수급자와 차상위계층 자녀, 소녀 가장 등에게 전달됐다. 김복득 씨는 최근 경남교육청의 제안으로 그의 증언과 일대기를 담은 ‘나를 잊지 마세요’라는 책을 출간했다. 그의 바람처럼 우리 사회가 김 씨를 포함한 위안부 피해자들을 오래도록 잊지 않고 기억하기를 소망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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