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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훈장 모란장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제주를 이끈 파란 눈의 신부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제주도에 현대식 양돈 초석 다진 파란 눈의 ‘돼지 신부’

패트릭 제임스 맥그린치 신부는 올해로 제주도에 산 지 만 60년이 됐다. 아일랜드에서 온 파란 눈의 ‘돼지 신부(神父)’는 1954년, 한국전쟁 직후 너나없이 궁핍했던 시절 선교사로 부임하며 처음 제주도와 인연을 맺었다. 제주도에 돼지 치는 법과 양모 짜는 법을 알려주고, 신용협동조합·병원·양로원·어린이집을 세우기도 했다. 그는 그렇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로 제주도에 뿌리를 내렸다.
시작은 양돈 사업이었다. 그 시절 일명 ‘똥돼지’를 기르던 제주도에 새끼 밴 요크셔 품종 암퇘지 한 마리로 현대적 양돈 사업을 벌이는 일이 쉽지만은 않았다. 돼지 새끼를 인근 마을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눠줬지만, 새끼가 다 크기도 전에 잡아먹거나 팔아치우는 경우가 부지기수였다. 결국 그는 제주 서쪽 한림읍 일대의 땅을 싸게 사들여 직접 돼지를 길렀다. 이 땅은 훗날 돼지 1만 3,000마리가 자라는 ‘성(聖) 이시돌 목장’으로 성장했다. 그간 변소에서 돼지 한두 마리 놓아기르던 제주도 사람들은, 이 목장에서 분양받은 돼지로 비로소 현대식 양돈 사업을 시작할 수있었다. 이 덕분에 맥그린치 신부에게는 ‘돼지 신부’란 별명이 붙었다.

신협, 양모 사업 등으로 제주도민 자립 도와

이후로도 맥그린치 신부는 제주도민을 위한 새로운 ‘선행 아이디어’를 계속 내놨다. 고리 사채를 쓰느라 힘들어하는 제주도민을 위해 제대로 된 금융기관을 만들자며 ‘한림신협’을 세우기도 하고, 섬 밖 외지에서 일자리를 찾지 못하면 가난에서 벗어날 수 없었던 제주 사람들을 위해 양모 사업도 벌였다. 양털 양말과 스웨터는 서울 시내 유명 호텔에서 팔릴 정도로 사업이 번창했다. 번 돈으로는 1970년에 병원, 1981년에 양로원, 1985년엔 유치원을 차례로 세웠다. 그렇게 제주도 사람들을 위한 복지시설을 짓고, 제주도 사람이 일할 수 있는 직장을 만드는 데 힘쓰자 1973년, 제주도는 그에게 명예도민 자격을 줬다. 이때 맥그린치 신부는 자신의 영어 이름 이니셜(M.P.J)을 따 ‘임피제’란 한국 이름도 지었다.

한국에 호스피스 정착시키는 게 마지막 소원

맥그린치 신부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 바로 호스피스 사업이다. 그는 이 사업을 위해, 2002년 성 이시돌 목장 안에 호스피스 전문 시설인 ‘이시돌 복지의원’을 설립했다. 여든 중반의 노신부는 이곳이 한국 호스피스 성장의 초석이 되길 소망하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는 우리 이웃들, 특히 말기 암 환자를 위한 호스피스 병원에 대해 보다 많은 관심이 쏟아지길 바랄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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